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브리튼에 도전하였다. 작곡가의 인기 관현악 레퍼토리인 프랑크 브리지의 선율에 의한 변주곡과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이중협주곡, 그리고 랭보의 시에 곡을 붙인 관현악반주의 연가곡 르 일루미나시옹에서는 현재 영국 오페라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성 소프라노 샐리 매튜스가 독창을 맡았다. 2008년 12월 10일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의 실황을 수록한 음반.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이번에는 벤자민 브리튼을 선보였다. 런던 필하모닉을 맡은 이상 영국 음악을 많이 연주해야하는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로 러시아 작곡가를 중심으로 레코딩을 해온 그였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 음반의 수록곡을 보면 단순히 의무감으로 출시했다는 생각을 잠시 유보하게 된다. 우선 ‘브리튼에게 이런 곡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관현악을 위한 '이중 협주곡'은 첫 브리튼 음반의 첫 수록곡으로서는 도발적이다. 초기작이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져 훗날 콜린 매튜스에 의해 완성된 이 작품은 브리튼 특유의 어둠이 깔린 상념과는 거리가 있으며, 후기 낭만의 기교적인 스타일을 이어받고 있다. 바이올린 독주를 맡은 피터르 스쿠만이 비교적 전면에 부각되기도 하지만, 비올라 독주를 맡은 알렉산더 젬초프와 함께 독주자로서라기보다는 앙상블로서의 호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둘은 각각 런던 필하모닉의 리더와 수석으로서 관현악단의 일원으로 앙상블 활동에 치중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특징은 오히려 독주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며, 결국 비올라의 승리로 돌아간 크레머/바슈메트/나가노의 연주(Erato)보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다면 인생이 단조로워질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듯이, 유롭스키의 이 음반이 나가노의 음반보다 매력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 음반의 문제는 독주자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거칠고 고급스럽지 못한 관현악에 있다. 다이나믹의 설정도 불분명하고 입체감도 떨어지는데, 라이브 녹음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점은 '이중 협주곡'에서도 그렇지만 관현악을 위한 '프랭크 브릿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 더욱 전면으로 드러난다. 현악 파트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제각각 갈라지는데, 공연 장소인 사우스뱅크 센터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곡의 여섯 번째 변주인 ‘빈 왈츠’와 같이 활을 폭넓게 쓸 수 있는 크고 리드미컬한 곡에서는 역설적으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 곡인 '레 일뤼미나시옹'은 고음의 목소리와 현악을 위한 작품으로, 소프라노인 샐리 매튜스가 노래를 맡았다. 이 작품은 이미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반주로 하는 이안 보스트리지의 연주(EMI)가 워낙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성이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사실 두터운 음성을 가진 샐리 매튜스는 보스트리지를 기억에서 잊게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맑고 깨끗하게 지속되는 고음에서 그녀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 월간 La Musica - 송주호

[ 수록곡 ]
1. Double Concerto For Violin & Viola (1-3)
2. Variations On A Theme Of Frank Bridge, Op.10 (4-14)
3. Les Illuminations, Op.18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