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제노바의 산 로렌초 성당과 그린위치의 구 왕립해군대학 채플에서 있었던 콘서트들을 담은 것으로, 각각 삼위일체 후 20, 21번째 주일을 위한 칸타타들을 수록하였다. CD1은 칸타타 BWV162로 장엄하게 시작된다. 오보에 다모레와 첼로 피콜로의 오블리가토가 곁들여진 아름다운 소프라노 아리아를 담은 BWV49가 이어지며, 천국의 혼례 잔치를 아름답게 그려낸 BWV180으로 마무리된다. CD2는 마가복음에서 텍스트를 취한 BWV109의 뛰어난 개시합창으로 시작된다. 트럼본이 사용된 희귀한 예인 BWV38와 온화한 분위기의 BWV98을 거쳐서 풍성한 화성과 확신에 찬 힘이 느껴지는 bWV188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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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리어트 가디너와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2000년 바흐 순례(발매)도 이제 어느덧 대단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번 음반은 삼위일체 축일 후 20~21주일을 위한 칸타타 일곱 곡을 담고 있으며, 2000년 11월에 이탈리아 제노바와 런던 그린위치에서 실황으로 녹음된 것이다. 약간의 편집 작업이 있기는 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매주 새로운 교회에서 새로운 칸타타를 실황으로 녹음한다는 작업은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일인데다 녹음 순서를 따르지 않고 거의 무작위에 가깝게 발매되고 있는 이 시리즈에서 음반마다 연주 수준과 분위기, 완성도와 음향상태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주일을 위한 칸타타를 한 자리에 모으다 보니 이번에도 초기-중기-후기 칸타타가 골고루 들어있는데, 이것은 가디너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음반은 이탈리아 제노바의 산 로렌초 대성당에서 녹음되었다. 바로 그보다 1주 전에 종교개혁의 산실이었던 비텐베르크(!)에서 종교개혁 축일 칸타타를 연주한 가디너 일행이 곧바로 이탈리아의 카톨릭 성당으로 향한 점이 재미있는데, 칸타타마저 결혼과 사랑을 아가(雅歌)풍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한 다채로운 작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재치 있는 선곡이다(가디너 역시 내지에서 이 점에 대해 재미있는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연주는 비텐베르크에서의 높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아마도 잔향이 풍부한 대성당이 녹음에 적당하지 않았던 점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2집의 파리 생드니 대성당처럼 악조건은 아니지만 녹음에 애를 먹은 티가 역력한데, 마이크 앞에 선 독창자나 비브라토가 풍부한 합창단에 비해 특히 오케스트라가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 독창진 역시 모두 뛰어난 가수들이지만 최상의 수준은 아니다. 특히 막달레나 코체나가 그답지 않은 난조를 보이는데, 시빌라 루벤스(코프만)나 유카리 노노시타(스즈키) 등 경쟁자들에 비해 집중력과 음색의 안정감이 부족하다. 다만 로버트 레빈이 복원한 162번 칸타타의 오블리가토 파트는 지휘자가 직접 복원한 스즈키(BIS)나 오르간의 즉흥연주에 맡긴 코프만(Challenge)에 비해 더 효과적이며, 180번의 첫 합창곡에서 서두르지 않으면서 적절한 템포를 택한 점은 돋보인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직후 런던 그린위치에서 녹음한 두 번째 음반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데, 전체적으로 카를 리히터나 프리츠 베르너 같은 옛 거장들도 별로 다루지 않았던 덜 유명한 작품들에다 제노바에서 어딘가 들뜬 분위기였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도 보다 실내악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비록 완벽한 균형감이 돋보였던 스즈키38번)나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코프만(98번, 188번)에 비교하면 다소 평면적인 연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앙상블이 명쾌하고 주요 모티프를 뚜렷하게 강조하는 가디너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연주이며 188번의 대규모 신포니아 연주(훗날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 편곡했다)나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역량이 잘 발휘된 109번의 칸타타의 코랄은 매우 아름답다. 독창자 중에서는 폴 애그뉴가 이름값에 걸맞는 절묘한 표현을 들려주고 있다.
이번 11집은 가디너의 바흐 순례 중에서 최상의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가 엿보이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잘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부분이나 세부적인 묘사가 정교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하지만 가디너 시리즈의 기본적인 미덕은 여전하며 흔히 듣기 힘든 곡이 많다는 점에서 나름의 매력은 충분하다. 사실 실황에다 녹음 일자와 무관하게 발매되고 있는 가디너 시리즈에서 코프만이나 스즈키처럼 오랜 여정의 끝무렵에 접어들며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월간 La Musica - 이준형
[ 수록곡 ]
DISC 1
1. Ach! Ich Sehe, Itzt, Da Ich Zur Hochzeit Gehe Bwv 162
2. Ich Geh Und Suche Mit Verlangen Bwv 49
3. Schmucke Dich, O Liebe Seele Bwv 180
DISC 2
1. Ich Glaube, Lieber Herr, Hilf Meinem Unglaubent! Bwv 109
2. Aus Tiefer Not Schrei Ich Zu Dir Bwv 38
3. Was Gott Tut, Das Ist Wohlgetan I Bwv 98
4. Ich Habe Meine Zuversicht Bwv 1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