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의 오촌 당숙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는 요한 제바스티안이 활약하기 앞서 바흐 가문이 배출했던 가장 유명한 음악가였다. 2009년 4월 런던 카도간 홀에서 있었던 콘서트 실황을 담은 본 신보는 JC 바흐가 남긴 다양한 양식의 성악곡들을 수록하였다. 라멘트, 이중창, 솔로 아리아, 모테트가 각 두 편씩 수록되었는데, 결혼의 기쁨을 담은 마지막 이중창 'meine Freundin'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장송용 음악다운 어둡고 애상적인 분위기를 머금고 있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와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는 이 음반에서 바흐 아카이브의 가장 빛나는 유산을 탐구하고 있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는 요한 제바스티안 이전의 가장 뛰어난 ‘바흐’였다. 대바흐는 5촌 당숙인 요한 크리스토프를 ‘심오한 작곡가’라고 부르며 깊이 존경했으며 라이프치히에서도 그의 음악을 많이 연주했는데, 어쩌면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큰 형보다도 큰 영향을 준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흐 가문의 음악을 광범위하게 다루었던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Archiv)과 칸투스 쾰른(HMF)을 비롯해서 모든 수록곡이 한번 이상 녹음되었지만 요한 크리스토프의 음악만으로 채운 음반은 처음인 것 같다. 프로그램은 디알로구스, 아리아, 라멘토, 모테트를 각각 두 곡씩 골랐다. 카를 필립 에마누엘이 아버지의 추도문에서도 언급한 칸타타 ‘싸움이 일어났도다’와 대바흐가 (아마도) 자신의 장례식에 연주할 의도로 힘겹게 필사한 모테트 ‘사랑하는 주님, 우리를 깨우소서’가 제외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작곡가의 다양한 형식을 두루 다루고 있다.
연주는 2009년 4월에 있었던 세 번의 공연을 편집한 것이다. 8명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은 아리아(독창이 아닌 간소한 합창곡이다)에서 깨끗하고 정제된 노래를 들려주며 가사에 대한 섬세한 집중력과 수사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대조적으로 풍부한 음향을 갖춘 모테트에서는 칸투스 쾰른이나 아카데미아(Pierre Verany)보다 뛰어난 극적인 묘사가 훌륭하다. 다만 두 곡의 라멘토는 조금 아쉽다. 르네 야콥스(Accent)부터 안드레아스 숄(HMF)까지 뛰어난 카운터테너들이 다투어 불렀던 ‘내 머리가 물이라면’과 막스 판 에그몬트(Ricercar)와 페터 코이(Ramee)가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던 ‘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에서 독창을 맡은 클레어 윌킨슨과 매튜 브룩은 신랄한 감정표현과 다양한 음색이 조금씩 부족하다. 반면 바흐 가문의 결혼식에서 늘상 연주되었던 ‘아름다운 내 사랑’은 유려한 극적 전개와 기쁨이 넘치는 활력이 인상적이다. 독창 라멘토가 약간 아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칸투스 쾰른의 단정하고 균형 잡힌 해석과는 또 다른 가디너의 극적이면서도 원숙한 해석, 소편성 성악-기악 파트의 빼어난 표현과 풍부한 상상력, 좋은 녹음이 조화를 이룬 음반이다. 올해 3월에 세상을 떠난 첼로/감바 연주자 리처드 캠벨(이 음반은 그에게 바쳐졌다)이 쓴 내지 해설 역시 훌륭하다.
- 월간 La Musica - 이준형
[ 수록곡 ]
1. Herr, Wende Dich Und Sei Mir Gnadig
2. Mit Weinen Hebt Sich`S An
3. Wie Bist Du Denn, O Gott
4. Der Gerechte, Ob Er Gleich Zu Zeitlich Stirbt
5. Ach, Dass Ich Wassers G`Nug Hatte
6. Furchte Dich Nicht
7. Es Ist Nun Aus Mit Meinem Leben
8. Meine Freundin, Du Bist Sch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