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10번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거장 발터 벨러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 벨기에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함께 푸가리베라에서 그 포문을 열었다. <영웅의 생애> 순간마다의 포인트를 절묘하게 잡아가는 섬세함과 중후하면서도 비인특유의 리듬감을 포용하는 그 거대함은 장관을 이루어낸다. 특히 <영웅의 싸움터>에서 타악이 선도하는 포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엇보다 플라메나 망고바의 빼어난 콘트롤과 파워풀한 터치와 어우러진 <부를레스크>는 노장의 노련함과 완벽한 신구의 조합을 이루는 이상적 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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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생인 발터 벨러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독일-오스트리아 계열 지휘계의 계보를 잇는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곤 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위상은 그 당시의 기대만큼은 아닌듯하여 못내 아쉽다. 카라얀과 반트 등의 기존 거장들과 오늘날 독일 지휘계의 적통을 자임하는 틸레만의 사이에 낀 세대라고나 할까.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는 그 이름부터 생소하게 다가오는데 거기에 오늘날에는 최신 유행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것 같은 R.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니 기대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우선 서두를 장식하는 슈트라우스의 젊은 시절 작품인 뷔를레스크는 200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위에 입상한 불가리아 태생의 여류 피아니스트 플라메나 망고바와 함께 하는데 첫 머리 도입부의 신랄함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녹음 자체의 게인이 상당히 낮게 설정되어 있는 탓도 있고 녹음 성향 자체가 폭넓은 다이내믹을 강조하기보다는 오밀조밀한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설정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찔한 진폭의 쾌감은 다소 부족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감상에 임하면 의외로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꼼꼼하게 다듬어져 있어 음악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잘 풀어나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도 제법 설득력 있는 연주라 하겠다. 이어지는 메인 프로그램인 영웅의 생애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수수하지만 자연스러운 흐름과 속깊은 내용이 담긴 연주로서 편안하게 작품을 들려주는 점이 장점이다. 이러한 벨러의 해석은 자신의 태생처럼 그 옛날 비엔나풍의 거장들이 만들어 내던 우아하고 간결한 울림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과연 오늘날의 감상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호소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 월간 La Musica - 이동관
[ 수록곡 ]
1. Burleske For Piano And Orchestra In D Minor
2. Ein Heldenleben, Symphonic Poem Op.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