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이은 류비츠카야라는 걸출한 신인을 발견하게 되는 음반이다. 전체가 카덴차라 해도 과언이 아닌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서 장대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펼쳐내는 명징한 피아니즘은 슬픈 현의 파도와 어우러져 가히 압도적으로 들려온다. 또한 <변주곡>과 류비츠코야가 발굴한 슈니트케의 숨겨진 피아노 명곡 <즉흥곡과 푸가>에서의 엄청난 비르투오지가 빛난다. 디아파종 5점 만점
--------------------------------------------------------------------------------------------------------------------
현대음악 관련 서적에서 슈니트케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마다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슈니트케의 현악사중주 3번과 같은 과거의 작품을 인용하는 스타일의 곡들이 주로 많이 소개되는데, 그 이유는 인용 기법이 20세기 후반에 크게 유행했던 중요한 작곡 방법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니트케의 음악에서 인용 기법뿐만 아니라 사운드의 공명으로 음향으로 공간을 채우는 특징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러한 특징은 슈니트케뿐만 아니라 같은 정교회 문화권인 아르메니아나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와 같은 러시아 주변의 작곡가들에게도 공통분모로 나타난다. 마치 종교 합창에서 들을 수 있는 정교회 특유의 두텁고 무거운 화음이 기악으로 나타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 듯하다. 이 음반은 이러한 스타일의 피아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1979년 작품 피아노와 현을 위한 협주곡은 슈니트케 특유의 음습하면서도 심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화음과 함께 종교적으로 침잠하는 분위기가 일품이다. 충전된 에너지가 가득 실린 피아노는 무게 있는 타건과 함께 현과 조화를 이루거나 대치하면서 깊고 명상적인 여운을 이어간다. ‘협주곡’이라는 제목 때문에 '비올라 협주곡'과 같은 화려한 비르투오조적인 연주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한 음 한 음이 울리면서 만들어내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패르트적 공명으로 슈니트케의 또 다른 음악 세계를 접하게 될 것이다. 만약 슈니트케의 대표적인 종교 합창곡인 레퀴엠이나 합창 교향곡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2년 전에 내한했던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연주한 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라멘타테'가 전해준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면 이 작품을 그 연장선상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60년대 중반에 작곡된 '한 화음에 의한 변주곡'과 '즉흥과 푸가'라는 비교적 앞선 작품도 함께 싣고 있다. '한 화음에 의한 변주곡' 제목 그대로 특정한 음정들만 사용하면서 리듬과 음역, 다이나믹으로 변주를 만들어가는 독특한 작품으로,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루비츠카야는 각 변주의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섬세한 터치로 신중하게 연주한다.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지만, 이어지는 즉흥과 푸가에서 이를 보상하듯 무조적인 선율을 강렬하면서도 화려하게 연주하여 감상자의 귀를 사로잡는다.
- 월간 La Musica - 송주호
[ 수록곡 ]
1. Concerto For Piano And String Orchestra Op.136
2. Variations On One Chord Op.39
3. Improvisation & Fugue Op.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