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록 곡 ]

1. La Mia Eta (나의 ETA) 
2. La Casa Al Mare (해변의 집) 
3. Sogno Di Liberta (자유의 꿈) 
4. Voltare Pagina (책장을 넘기며) 
5. Fine Settimana (즐거운 한 주) 
6. I Suoi Vertanni (베르타니의 소리) 
7. Piccolo Teatro (소극장) 
8. Come Spiegarti (그대에게 설명하듯이) 
9. Senza Bagagli (빈손으로) 
10. Dio Che Paura Dell'Amore (사랑의 두려움을 주관하는 신)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밀바가 엮어낸 삶의 무게.

작년, 12월 단순하게 대중음악이라 보기에는 조금 무거운 듯한 2장짜리 앨범이 국내에 소개 되었다. 시와 음악, 예술이라는 일관된 공통성에 역사와 의미, 그리고 자각을 담은 앨범이자, 남미의 저항시인 네루다와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고통의 무게가 점철되었던 는 다양성, 혹은 여행의 이미지로 다가오기 쉬운 월드뮤직에 대한 시선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케 했다. 비록 그것이, 대중적 친밀감에서는 조금 미흡하다 해도 말이다.

 

 

사실상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 인생 여정에는 마리아 파란투리, 마리아 델마 보넷 등 다양한 여가수등과 동참했었고, 그 가운데서 밀바 또한 테오도라키스의 투쟁의 역사와 삶에 대한 존경과 헌신으로 함께 했었다.

 

이미, 소개된 수많은 앨범을 통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밀바는 특유의 고혹적이면서도 애잔한 노래와 목소리로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디바로서, 예의 그녀만의 애절하고 풍부한 성량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왔다.  에디뜨 삐아쁘의 번안곡으로 데뷔한 지 어언 5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밀바는 피아졸라와 반젤리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다양한 음악인들과 활동했었고, 테오도라키스와 함께 한 것 또한 칸초네의 여왕이라는 단어에 정착할 수 없는 그녀만의 자긍심을 키워주었다.

 

밀바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함께 한 “10 songs by Mikis Theodorakis”는 이태리의 시인 세테리스의 시, 작사가인 이아코보스 캄바넬리스 그리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곡을 위주로, 음악적 가치와 함께 느낄 수 있는 풍부한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 부드럽고 두툼한 현악 앙상블을 바탕으로 앨범의 모든 노래들은, 부주키와 기타, 그리고 밀바의 목소리로 풍성하게 드리워져 있다. 테오도라키스의 명곡이자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이태리어 번안곡인  ‘Come Spiegarti(그대에게 설명하듯이)’에서의 처연함은 원곡이 가지고 있는 서글픔의 무게에 대한 관조가 이어 있으며, 첫 번째 곡 'La Mia ETA (나의 ETA)‘의 염원에 대한 순수한 이미지는 시간을 이겨낸 농밀함으로 뭉쳐 있다.

 

세월의 무게에는 늘 그렇듯 수많은 흔적이 묻어 있다. 그리고, 흔적은 숙성된 농밀함으로 나타나곤 한다.  오랜 세월을 겪어낸 이들의 삶의 무게. 그렇게 걸러지고 쌓아가며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애틋함으로 시대의 가인들이 엮어낸 이 음반의 가치야말로 음악으로 표현된 인생 역정의 회한이다.


▶ 시대정신 안에서 핀 붉은 장미 향기
Milva: 10 Songs By Mikis Theodorakis

 

냉전시대에 대한 기억도 벌써 가물가물해지려는 ‘세계화’와 ‘FTA'의 시대. 그나마 월드컵이 있어 약소국들이 축구로 거대 국가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한풀이하는 2006년의 여름도 뜨거워져갑니다.
  민중의 노래와 시로 어둠과 고난의 시대를 돌파해갔던 두 거인, 테오도라키스와 파블로 네루다가 하나가 된 오라토리오 (모두의 노래)를 음반으로 만난 것이 2005년 12월입니다. 이 음반은 남미 대륙과 자연에 대한 네루다의 사랑과 열정을 담은 대작으로 20세기 유럽과 남미에서의 좌파 혁명의 꿈과 이상을 담고 있는 가장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기록인 동시에, 영화 <페드라>와 <희랍인 조르바>의 음악, 그리고 아그네스 발차와 사비나 야나토우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등의 범주에서 늘 맴돌던 테오도라키스의 존재감을 비로소 전세계의 민중에게 음악으로 헌신하고자 했던 진보적 음악가로 끌어올린 중요한 기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조국의 아픔과 자신의 음악행위를 운명적으로 하나의 지점에서 받아들여 예술과 양심을 하나의 정점에서 추구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자신의 정신적 긍지나 양심보다 훨씬 천박한 현실과 이념의 벽에 부딪혀 고뇌하던 빅또르 하라와 한스 아이슬러, 윤이상 등과 더불어 그는 20세기 역사가 남긴 그 붉고 진한 흔적의 최후의 증인입니다. 이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음악의 의인들의 한 명으로써,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시대정신과 영혼의 자유를 음악 속에서 한 평생 추구해온 표상으로 남을 것입니다.

 

  7살부터 비잔틴 성가와 그리스 민속음악을 공부하며 무반주 가곡을 작곡하기도 하고, 합창단을 조직해서 활동하기도 한 음악 천재 테오도라키스를 투사로 만든 것은 십대에 맞은 2차대전입니다. 독일의 침략으로 혹독한 시련에 빠져든 조국 그리스에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테오도라키스는 영국, 미국, 터키, 독일 등과의 부단한 지배와 항거의 수렁에 허덕이는 조국에서 민족 세력인 좌파의 일원으로써 구속과 추방, 수감을 거듭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군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그리스의 상황을 그린 작품을 작곡하고, 내전과 떠도는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음악공부를 했던 테오도라키스는 유난히 공부에 대한 욕망이 강한 인간이었습니다. 50년대에 파리에 유학하여 메시앙과 유진 비고트에게 음악분석과 지휘를 공부하기도 한 그는 배울 때마다 하나씩 역작을 만들어가는 무서운 성취력을 보여주면서, 그리스 현대 음악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세월은 추상같이 흐르는 가운데 2000년 7월 29일 뮌헨에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75회 생일을 축하하는 공연이 열렸습니다. 테오도라키스 해석의 명인들인 마리아 파란투리와 페트로 판디스는 물론, 재즈 싱어 조셀린 스미스, 스페인의 마리아 델마 보넷, 그리고 칸초네의 여왕 밀바 등 당대의 가인들이 한 무대에서 정의와 자유에 혼을 바친 거장에게 존경과 우정을 노래로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밀바는 테오도라키스의 명곡 ‘기차는 8시에 떠나고To Treno Fevgi Sitis Ochto’를 독일어로 불러주어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마음을 더욱 뜨거운 감회로 충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밀바가 1960년대 후반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독일어로 노래한 음반 , 를 발표하여 브레히트라는 이름에 낭만성을 고취시켰던 것처럼, 결국 테오도라키스의 노래들은 음반을 통해서도 밀바의 목소리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밑바닥 계층의 음악 렘베티카에 서구적 화성과 예술성, 민족주의와 진보적 정신을 가미하는 미학을 완성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세계를 목소리로 대변해온 것은 마리아 파란두리Maria Farandouri와 페트로스 판디스Petros Pandis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철학적이고 진지한 목소리로 테오도라키스를 해석하고 표현해왔습니다. 유독 밀바는 그들과는 또다른 화법으로 테오도라키스 음악의 시적詩的 서정과 낭만을 넓히고 있습니다. 오랜동안 독일어로 노래해온 탓인지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하는 밀바의 목소리는 그리스의 리듬을 최대한 흥겹게 살리면서 테오도라키스의 운율과 선율에 풍부한 인간미를 부여합니다.

 

  밀바Milva는 본래 장미의 이름입니다. 속은 노랗고 가장자리는 붉은 농염한 자태의 장미. 생각해보면, 도도하고도 우아하게 지중해의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마리아 일바 비올카티Maria Ilva Biolcati. 1939년생인 밀바가 스무살 때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들을 이태리어로 부른 앨범 를 발표하며 세계 음악인 행렬의 일원이 된 지 벌써 50년이 가까워갑니다. 그 또한 우리 세기를 대표하는 가인歌人으로 불러 부족함이 없는 밀바의 목소리는 유럽의 20세기 현대사, 그 가장 낭만적인 정서를 상징합니다. 70-80년대에 브레히트를 노래하며 독일어권에 칸초네의 맛을 알리고, 80년대 후반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함께 탱고의 새로운 해석을 공연과 음반으로 시도하기도 한 그녀는 반젤리스를 통해 에게해의 심연과도 같은 ‘Sie Sind Noch Jung' 등 그리스 정서를 훌륭히 노래해온 풍부한 감성으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노래를 이태리어로 부르며 깐초네의 여왕이라는 애칭으로는 성이 안차는 노래의 미학을 전해줍니다. 젊은 날 음악과 영화 모두에서 정점에 오르며 농염한 매력을 발산해온 스케일은 현재까지도 줄어들지 않은 채, 2000년대 와서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그 변색되지 않는 목소리가 세월의 흐름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점은 그녀의 마력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녀가 부르는 노래 한 곡 한 곡에는 인생의 빛과 어둠을 모두 거쳐온 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성찰이 클래시컬하면서도 맛나게 담겨 있습니다. 마치 잘 숙성된 양주처럼. 10곡으로 엄선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정수를 이태리어로 감상하는 맛은 그렇게 쓰디쓰면서도 짙은 향기에 취해 있을 수밖에요.

 

 1. La Mia Eta (나의 ETA)  조국 그리스의 민주화와 남미 민중의 승리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던 테오도라키스가 지구적 연민과 동지애를 가지고 스페인 바스크 지방 분리 독립을 위해 싸워온 무장단체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에 대한 우정과 존경을 담은 이 곡을 노래하는 밀바의 목소리는 현대사의 그림자를 뚫고 비상하려는 염원과 영성으로 차 있습니다. 도입 부분의 간결하지만 장중한 현악 반주도 인상적입니다.
 2. La Casa Al Mare (해변의 집)  지중해와 에게해 바닷가에 섬처럼 쓸쓸히 놓여 있는 집들과 아득한 수평선, 그리고 거센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곡에는 테오도라키스의 망명 시절의 어두운 상념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밀바의 중저음은 대지의 울림 같고, 현악 앙상블에 실린 멜로디는 굵직한 파도와 바람처럼 마음의 심연을 두드리며 다가옵니다.
 3. Sogno Di Liberta (자유의 꿈)  테오도라키스 특유의 미디엄 템포의 4분의 2박자 리듬이 자유와 정의를 위한 민중의 발걸음처럼 느껴지는 이 곡은 마치 지구시민의 영가처럼 힘과 아름다움이 공존합니다. 강한 어조로 노래하는 밀바의 힘이 인상적인 곡.
 4. Voltare Pagina (책장을 넘기며)  이탈리아 70년대 클래식과 포크록이 만나던 낭만적인 선율이 연상되는 곡. 햇살 밝은 지중해의 창가에서 책장을 넘기는 건강한 풍경입니다.
 5. Fine Settimana (즐거운 한 주)  경쾌한 리듬에 담긴 건강한 정서가 밀바의 씩씩한 노래와 부주키, 만돌린 연주와 함께 춤추듯 표현되어 있습니다.
 6. I Suoi Vertanni (베르타니의 소리)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수평선처럼 평온하고 절제된 연주와 노래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곡.
 7. Piccolo Teatro (소극장)  시간의 흐름과 무상함을 오래된 작은 극장(또는 이태리의 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극단 삐꼴로)에 빗대어 연극과도 같은 인생을 쓸쓸히 노래한 곡.
 8. Come Spiegarti (그대에게 설명하듯이)  테오도라키스의 곡을 대표하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To Treno Fevgi Sitis Ochto)의 이태리어 버전. 아그네스 발차와 사비나 야나토우가 그리스어로 불렀던 버전이 고전적이고 신비롭다면 밀바의 노래는 강한 뉘앙스의 목소리로 간결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9. Senza Bagagli (빈손으로)  오보에와 어쿠스틱 기타, 첼로가 이태리 포크록의 향미를 느끼도록 하는 가운데 절제되었어도 유려한 멜로디에서는 빛이 나는 명곡.
10. Dio Che Paura Dell'Amore (사랑의 두려움을 주관하는 신)  피아노와 첼로 및 현악 앙상블 위에서 절제된 창법으로 사랑의 신을 노래하는 간결한 곡.

 

2006. 6
강민석 /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