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는 겨우 21세에 이슬람 궁전의 하렘(후궁)을 탈출하는 유럽 여인의 얘기인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모차르트의 <후궁 탈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대에 가장 인기있는 소재였다. 로시니는 이듬해에 이런 상투적인 구조를 역전시켜 이탈리아를 방문한 터키 태수라는 설정으로 새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것이 <이탈리아의 터키인>이다. 한동안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아류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로시니는 이 전작(前作)으로부터는 한 구절도 인용하지 않았다.
본 영상물은 2002년 가을 취리히 오페라 실황이며 이탈리아 베이스의 지존격인 루제로 라이몬디가 터키 태수를, 우리 시대 최고의 로시니 가수 체칠리아 바르톨 리가 여주인공 피오릴라를 부른다. 두 가수의 노래만으로도 로시니 희극 오페라의 진수를 만끽하기에는 충분하다. 독창적인 것으로 유명한 취리히 오페라는 미묘한 ‘극중극’으로 설정된 이 오페라의 독특한 구조를 간결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무대로 잘 살려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