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당시의 2막판으로 오랜만에 회귀한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실황

스벤-에릭 베흐톨프의 연출은 작품의 무대를 초연 당시에 유행했던 음울한 아르 데코 풍으로 다루었으며, 심리적 묘사나 성적인 상징에서 자극적인 요소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타이틀 롤의 라우라 아이킨은 연출자의 의도에 부응하여 룰루의 변신을 숨 가쁘게 그려냈을 뿐 아니라 가창력도 무척 정확하고 능수능란하다.

무조음악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알반 베르크의 <룰루>는 1937년 초연된 이래 현대 오페라 중 가장 인기있는 작품으로 손꼽혀왔다. 특히 1979년에 프리드리히 체르하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3막을 완결지음으로써 현재는 3막판의 상연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실황(2002년 12월)은 이 오페라가 초연된 도시답게 2막판으로 회귀하고 있다. 체르하의 작업이 워낙 뛰어났기에 2막으로 돌아간 것이 반드시 정통성을 갖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스페셜 피쳐로 제공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2막판이 갖는 장점을 나름대로 의미있게 설명한다.
스벤-에릭 베흐톨프의 연출은 작품의 무대를 초연 당시에 유행했던 음울한 아르 데코 풍으로 다루었으며, 심리적 묘사나 성적인 상징에서 자극적인 요소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 줄거리 ]
○ 아르놀트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함께 12음 기법의 대표적인 존재인 알반 베르크(1885~1935)는 <보체크>와 <룰루>라는 두 오페라를 통해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오페라들은 그냥 난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의 행태를 너무나 상징적이면서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룰루>는 미완성으로 남겨졌고 베르크의 미망인이 3막의 완성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판권를 가진 빈의 유니버설 에디션은 몰래 프리드리히 체르하에게 완성을 의뢰했고 미망인이 사망한 후에야 완성판을 발표할 수 있었다. 완성판은 1979년 파트리스 셰로 연출, 피에르 불레즈 지휘로 파리에서 초연되었으며 베르크의 의도를 완벽하게 살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때부터 2막판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굳이 2막판을 ! 선택한 것은 취리히가 이 오페라의 초연지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 주인공 룰루는 거치는 남자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프 파탈적 이미지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 룰루에게는 별 악의가 없으며 남자들은 모두 스스로에 의해 파멸당하는 것이다. 오히려 룰루야말로 사회적 도덕률의 잣대로 재단되어 결국 희생당하는 존재이다. 룰루의 비극은 타락한 여인에게 부과되는 벌이 아니라 인간 소외에 의한 비극이다. 이런 점을 살리는데 베르크의 구조적인 작곡기법은 빛을 발한다. 주요 인물은 12음 기법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며 악기도 등장인물과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리듬과 형식도 내용을 묘사하는데 이용된다.
○ 이 취리히 실황은 2막판이란 점, 또 산만한 나열식 연출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논쟁을 불러일으킬 프로덕션이다. 그러나 모두 3막판을 택하는 시대에 벨저-뫼스트 같은 일급 지휘자가 2막판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참신해 보인다.

지휘자 : franz welser-most, conductor / sven-eric bechtolf, stage director

연주자 : laura aikin (lulu) / cornelia kallisch (grafin geschwitz) / peter keller / steve davislim / alfred muff / peter straka / guido gotzen / andrea bonig / katharina peetz / rolf haunstein / martin zysset / werner groschel

오케스트라 : orchestra & chorus of zurich opera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