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우라 귈러의 쇼팽 연주음반에 이어 도론레이블에서 스위스 방송의 귀중한 녹음을 발굴하여 공개하는 협주곡 연주로, 64년 녹음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이다. 스튜디오 녹음으로 감상하는 모차르트에서의 우아한 격조, 스위스의 거장 데자르첸스와 함께한 베토벤 협주곡 4번 실황에서의 강렬함에 이르기까지 음악 애호가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진정한 "명품터치"이다. 베토벤 4번은 이전에 발매된 앙세르메와의 58년 녹음과 비교하면 그 재미를 더할 것이다.
파리에서 러시아계 아버지와 루마니아계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유라 귀예는 1940년대 이전에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루마니아 혈통을 함께 나눈 친구이자 라이벌인 클라라 하스킬을 압도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귀예의 삶은 전쟁과 질병에 의해서 뒤틀려 버렸다. 2차 대전 직후에 귀예는 신체적, 정신적 이유로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고, 10년 가까이 음악계를 떠나 아시아에서 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55년부터 유럽에서 활동을 재개하긴 했지만, 광범위한 명성을 얻지는 못했고 남겨 놓은 음반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몇 장의 음반들, 특히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녹음이나 님버스에서의 스튜디오 레코딩은 거의 전설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워낙 디스코그래피가 빈약하기 때문에, 귀예의 음반은 새로 발굴되는 한 장 한 장이 대단히 귀중하다. 타라에서 몇몇 주목할 만한 음반이 발매됐었고, 도론에서 내놓았던 쇼팽의 마주르카와 녹턴 음반 역시 큰 주목을 받았었다. 이번 음반은 도론이 발매한 귀예 시리즈의 두 번째 음반으로, 스위스 로망드 라디오의 아카이브에서 새롭게 발굴한 음원이다. 무엇보다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귀예의 협주곡 녹음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모차르트 역시 훌륭하지만,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베토벤의 4번 협주곡이다. 앙세르메/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58년 녹음이 타라에서 발매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귀예의 음색과 표현력은 이번 음반에서 훨씬 더 실감나게 포착되어 있다. 음표 하나하나를 미묘한 음영의 변화로 장식하는 귀예의 스타일은 요즘 연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다.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산만해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는 점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음색 자체만으로도 귀예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쇼팽적인 감수성으로 채색된 1악장 후반부의 카덴차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아티큘레이션의 컨트롤을 잃는 경우도 눈에 띄지만 69세의 나이를 고려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방송국 녹음임을 감안하면 음질은 대단히 양호해서 스테레오 녹음 수준의 공간감을 확보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1960년대의 전형적인 방송용 모노 녹음이지만, 피아노 쪽으로 초점이 맞춰진 녹음 덕분에 귀예의 마술적인 음색을 느끼는 데는 지장이 없다. 모차르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마갈로프의 드라마틱한 카덴차도 제법 흥미롭다. 빈약한 귀예의 디스코그래피를 채워줄 소중한 발굴이다.
- 월간 La Musica - 고경남
[ 수록곡 ]
1. Piano Concerto In E Flat Major, Kv 482, No.22 (1-3) (Wolfgang Amadeus Mozart)
2. Piano Concerto In G Major, Op.58, No.4 (4-6) (Ludwig Van Beethov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