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6월, 베를린 필하모닉은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던 영국 코벤트리 대성당의 폐허 옆에 세워진 새로운 대성당의 완공을 기념하는 연주회에 독일 및 베를린 시 대표로, 평화와 우정의 사절단으로 참여했다. 상임 지휘자 카라얀이 지휘를 꺼리는 가운데 오이겐 요훔과 존 바비롤 리가 두 번의 공연을 나누어 지휘했는데, 이 음반은 두 번째 공연인 6월 6일 연주회 실황이다. 이날 연주회는 그 역사적인 중요성 못지 않게 예술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1949년에 처음 등장한 이래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객원 지휘자로 꼽히는 바비롤리는 브람스 교향곡 번의 낭만적인 정서와 건축미를 꼼꼼하게 드러내는 멋진 해석을 들려준다.
세계 2차 대전이 남긴 불행한 흔적이 냉전과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또 다른 피가름이었다면 그 이면엔 전범국과 다른 나라 간의 끊임없는 화해의 손길도 지속되었다. 비극적 상잔의 재속에서 음악인들은 다시금 희망을 찾았고 종전 후 작곡가 브리튼은 전쟁 레퀴엠에서 갈리나 비쉬뇨프스카야,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피터 피어스 같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성악가들로 암묵적 화의를 제안했다. 전쟁 레퀴엠의 초연 이후 화해의 상징물이 된 코벤트리의 성 미카엘 성당은 이후 이러한 화해의 장이 되었는데 공습으로부터의 치유를 막 끝낸 대성당의 완공을 기념하는 연주로 62년 6월 두 번의 공연이 열렸다. 다소 껄끄러운 위치였던 카라얀은 이 연주회의 지휘를 고사했고 존 바비롤리가 두 번째 공연의 지휘봉을 맡았다.
바비롤리의 브람스는 의외로 그 기록이 적게 남아있는데 빈 필과의 전집(EMI)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연주(Orfeo)가 공식적인 레코딩 기록으로 남아있다. 베를린 필단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바비롤리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연주들과 같이 구축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전의 음반에서 빈 필과의 연주가 전원적인 정경을 포착하고 있다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는 보다 분절적이고 건축적인 면모가 강했다.
베를린 필과의 연주는 분명히 음향적 강렬함과 다이내믹의 운용이 가장 격렬한 연주로 꼽을 수 있다. 1주제의 첼로와 베이스의 제시음은 엄숙하게 드러나며 가벼운 전원을 상기하는 1주제에서도 베를린 필은 상당히 묵직한 소릿결을 들려준다. 2악장의 목가적인 장면들도 베를린 필의 밀도 짙은 음향에 의해 거의 브루크너적인 소노리티를 들려주는데 카라얀 시대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래틀 시대의 화사함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특히 재현부 직전 폭발하는 팀파니의 울림은 전쟁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불안감을 지니고 으르렁댄다. 3악장에서 둔탁한 음향 탓에 기민함이 다소 떨어지는 단점이 느껴지지만 4악장의 여러 주제군이 대위법적으로 얽혀 드러나는 대목은 전쟁의 화해를 정점으로 드러낸 것처럼 축제적인 분위기로 충만하다. 모노이며 울림이 강조된 녹음 탓에 다소 흐릿한 음향은 아쉽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 월간 La Musica - 노태헌
[ 수록곡 ]
1. Symphony No.2 In D, Op.73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