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작곡가 마르탱(1890-1974)의 뿌리는 바흐다. 특히 본 음반에 수록된 3작품은 옛 거장의 그림자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프시코드협주곡은 풀랑의 것과 함께 이 악기를 위해 20세기에 완성된 대표적인 걸작이며, 바흐의 동명 오르간 걸작에 기반을 둔 파사칼리아와 수난곡 속의 여러 이미지를 바이올린독주와 현악오케스트라를 통해 표현한 폴립티크 역시 바흐 지향적인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뚜렷히 보여준다.
마르탱의 오케스트라 작품집의 두 번째 음반으로 그간 만나기 어려웠던 '폴립티크'가 수록되어 있다. 원 제목은 '폴립티크 - 그리스도의 수난의 여섯 가지 인상'이다. 독주 바이올린과 두 파트로 구성된 현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이다. 평생 조성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던 작곡가였던 만큼, 그가 조성을 기반으로 하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음 체계를 사용했는가를 탐구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그가 쇤베르크의 음렬기법을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조성의 파괴를 위한 연구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조성음악 안에서의 새로운 규칙들로 자리하게 했다는 점과도 일치한다. 선율의 발전 가능성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기도 하다. '폴립티크'에서 역시 독주 바이올린의 활약이 큰 만큼 마르탱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선율에의 시도는 이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바이올린의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화음과 상관없이 새로운 음들로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자칫 이를 음렬주의(Serialism)를 위한 ‘음의 행렬’로 잘 못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마르탱은 순간순간 화음과 부딪히는 몇몇의 낯선 음정들을 마치 해결되지 못 한 비화성음의 사용처럼 정당화 시켜 버렸다. 그리고 같은 선율들에 또 다른 화음을 붙여 두 그룹의 앙상블이 서로 다른 느낌의 악상들을 연주하게도 한다. 언뜻 무조음악으로 들릴 수도 있는 패턴이겠으나 조성의 유무에 관계없이 마르탱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들이 선명하게 살아있는 음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제 2곡인 ‘최후의 만찬’의 경우에는 음악적인 분석이 거의 필요치 않은 신앙적인 감성에 의존한 작품으로 선율의 흐름에 몸을 실으면 그뿐이다. 독주 바이올린의 빌리 침머만의 심금을 녹여내는 호소력 넘치는 연주는 '폴립티크'의 본질을 그대로 꿰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수록작품 '하프시코드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연주는 매우 만족스럽다. 앞으로 마르탱의 컬렉션에서 반드시 언급될 수 있을만한 음반이다.
- 월간 La Musica - 유영희
[ 수록곡 ]
1. Polyptyque (1-6)
2. Passacaille
3. Concerto Pour Clavecin (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