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D단조는 원래 교향곡 2번이 됐어야했을 작품이다. 브루크너는 부정적인 평가에 상심하여, 이 작품을 버린 자식 취급했다. 이 작품은 틴트너와 같은 이가 ‘완성도 높은 걸작’으로 격찬했을 정도로 브루크너의 모든 음악적 특징들의 예초를 충실히 담고 있는 수작이다. 본 음반에는 이 비운의 교향곡과 더불어 1892년에 완성한 작곡가의 최초 관현악 작품들인 3개의 관현악소품과 행진곡의 최초 레코딩이 수록되었다.
슈테판 블루니어/본 베토벤 오케스트라의 녹음 활동을 잘 살펴보면, 이렇다 할 홈런은 없는데 꾸준한 안타로 높은 타율과 타점을 챙기는 실속파 야구 선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에 번쩍 띄는 엄청난 명연은 없어도 관심을 기울이면 주목할 만한 녹음들이 많다. 이번에 나온 브루크너 교향곡 0번 녹음(2010년 5월 공연 실황)만 해도 그렇다. 근래 나온 녹음 가운데 보기 드문 성과라는 것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짐작할 수 있다. 짜임새가 대단히 정연할 뿐만 아니라 밸런스도 좋고 투명한 음색도 무척이나 호감을 준다. 다만 지적해야 할 사항은 녹음인데, 성부 분리가 잘 되어 있고 초점도 뚜렷한 편이지만 잔향이 지나치다. 1악장 제시부에서는 현의 앙상블이 워낙 확고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1악장 발전부의 일부 악구나 2악장 제시부(이 곡은 드물게도 2악장 역시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3악장 트리오, ‘행진곡’ 중간부 등 목관 중심의 전개를 보이는 대목에서는 잔향이 투명한 음향을 한층 강조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의 신랄한 프레이징이나 전후 악구를 두고 이루어지는 각 성부의 긴밀한 결합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3악장 스케르초 섹션은 잔향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다(바렌보임/시카고 심포니의 DG 녹음과 비교해 들어보라). 물론 ‘오르간적인 음향’이라는 면에서는 잔향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격렬하다기보다는 묵직한 1악장 코다가 잘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교향곡 0번은 아직 오르간적인 장중함보다는 투명하고 명쾌한 짜임새 쪽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곡이므로(여기서 우리는, 반트나 요훔 같은 정통파 브루크너 대가들이 이 곡을 잘 녹음하지 않은 반면 해석 면에서 비교적 이단에 속하는 바렌보임이나 스크로바체프스키 등이 이 곡에 손을 대 좋은 성과를 거둔 이유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에 비해 득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유장하고 중후한 흐름을 보여주는 2악장과 경쾌한 진행과 밝은 색채감을 보여주는 피날레는 잔향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특히 훌륭하게 해석되었다.
여기에는 교향곡 0번보다 더 초기작인 ‘행진곡’과 ‘세 개의 소품’이 보너스로 실려 있다. 녹음되는 경우가 지극히 드문 만큼(현재로서는 두 곡 모두 이것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녹음인 듯하다) 이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싶으며, 여기서도 연주는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식의 무성의나 어찌 되든 싣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행진곡’은 적당한 허세와 당당함을 보여주는 바깥쪽 섹션과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중간부가 훌륭한 대비를 보여주며, ‘세 개의 소품’ 역시 첫 번째 곡의 종교적인 경건함과 두 번째 곡의 다소 어두운 부드러움, 목가적인 분위기와 축전적인 성격이 적당히 섞인 세 번째 곡 모두 지극히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 월간 La Musica - 황진규
[ 수록곡 ]
1. Symphony No.0 Wab 100 D Minor (1-4)
2. March Wab 96 D Minor
3. Three Pieces Wab 97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