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를 통해 선보이는 가디너 바흐 칸타타 시리즈의 20번 째 음반. 2000년 7월 30일 독일 안스바흐(삼위일체 후 7번 째 주일)와 8월 5,6일 스코틀랜드 하딩턴(삼위일체 후 7번 째 주일)에서의 실황을 수록하였다. 알토를 위한 솔로 칸타타인 BWV170은 영국의 정상급 카운터테너 마이클 챈스가 노래하였다. CD1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송 칸타타 'Der Gerechte kommt um'은 과거 바흐의 작품으로 추정되었지만 최근 들어 전임자 쿠나우의 것으로 판명난 작품으로, 가디너의 바흐 순례여행 시리즈에서 앙코르로 자주 연주되었던 작품이다. 두 파트 11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장대한 칸타타인 BWV186과 요한 헤르만의 찬가를 그대로(per omnes versus) 사용한 BWV107, 그리고 후일 미사 G단조 BWV235에 일부 선율이 차용된 BWV187이 CD2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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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리엇 가디너의 바흐 칸타타 순례도 이제 어느덧 후반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번 4집(1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실황녹음인 만큼 발매 순서는 별 의미가 없다)은 삼위일체 축일 후 여섯 번째 및 일곱 번째 주일을 위한 칸타타를 수록하고 있다. 삼위일체 주일 후 주일들은 시기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기 때문에 양적으로도 가장 많고, 따라서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첫 번째 음반은 바흐 축제로 유명한 독일 안스바흐에서 연주한 칸타타 170번과 9번을 담고 있다. 가디너는 직접 쓴 내지에서 바흐 음악에 대한 안스바흐 특유의 엄숙하고 경직된 태도를 공손한 방법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아니면 잔향이 많은 굼베르투스 교회의 음향 때문인지 연주 전체가 살짝 가라앉은 느낌이다.
음반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단연 170번 <안식을 즐기고, 영혼의 기쁨을 소망하라>일 것이다. 바흐의 독창 칸타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하며 알프레드 델러(Vanguard) 이후 위대한 카운터테너들이 빠짐없이 불러온 이 작품에서 챈스는 극적인 기복과 뜨거운 감정, 다양한 표현을 담은 인상적인 노래를 들려준다. 다만 때때로 음정이 약간 흔들리고 목소리가 전성기를 지났음이 드러난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10년 전 쯤에 녹음을 했다면 찰스 브레트(Teldec)나 제임스 보먼(Hyperion), 안드레아스 숄(HMF)을 능가하는 절창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편 코랄 칸타타인 9번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였나이다>는 코프만(Challenge)에 비해 약간 평면적인 연주이기는 하지만 내면적 깊이가 돋보이는 테너 아리아는 인상적이다. 사실 코프만보다 두 배는 더 느린 템포(내지에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는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길크라이스트는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뛰어난 기량과 가사에 대한 통찰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한편 스코틀랜드 헤딩턴에서 연주한 세 곡의 칸타타를 담은 두 번째 음반은 전반적으로 첫 번째 음반에 비해 더 나은 연주를 담고 있다. 독창진도 보다 안정되고 독일어 발음도 더 좋으며, 가디너의 해석과 잘 어울린다. 특히 107번 <내 영혼이여, 어찌 슬퍼하는가>는 코랄 칸타타에 약한 가디너답지 않게 다채로운 표현과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수연으로 코프만이나 스즈키(BIS), 헤레베헤(HMF)에 뒤지지 않는 좋은 연주이며 187번도 좋은 연주다. 실황 연주 특유의 실수가 간혹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문제될 정도는 아니다. 기악 연주도 훌륭한데, 베이스와 오르간을 특별히 언급해두고 싶다.
바흐 연주양식이 하루가 길다 하고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80년대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가디너의 연주를, 그것도 녹음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리스 조각상 같이 명쾌한 프레이징과 잘 정돈된 합창단(합창단만큼은 긍정적이고 폭넓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빼어난 기악 연주는 언제나 가디너의 미덕일 것이다.
이번 음반은 (특히 첫 번째 음반이) 기복이 다소 심해서 특별히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황 연주의 특징과 독특한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시리즈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음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음반에서 연주자들은 분명 1주일 전 독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응집력과 친밀함으로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월간 La Musica - 이준형
[ 수록곡 ]
DISC 1
1. Es Ist Das Heil Uns Kommen Her Bwv 9
2. Vergnugte Ruh, Beliebte Seelenlust Bwv 170
3. Kuhnau/ Bach (Attrib) : Der Gerechte Kommt Um
DISC 2
1. Argre Dich, O Seele, Nicht Bwv 186
2. Was Willst Du Dich Betruben Bwv 107
3. Es Wartet Alles Auf Dich Bwv 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