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만을 넘어서 관현악 모음곡에 새로운 시대를 연 J.S 바흐의 관현악 모음 전곡을 파울 돔브레히트와 그의 시대악기 앙상블 “일 폰다멘토”의 연주로 만나본다. 이들은 나중에 더해진 트럼펫, 팀파니, 오보에를 뺀 바이마르와 쾨텐 시대의 오리지널 버전의 연주를, 특히 2번의 경우는 b단조의 플루트 솔로가 아닌 원래의 a단조의 바이올린 솔로의 연주를 들려준다. 바흐의 예술적 정취를 그대로 담은, 눈부신 햇살 가득한 녹음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궁에서 울려 퍼지는 듯 우아하고 고풍스런 연주가 마음과 귀를 정화시켜준다.
최근 들어 음악학자들과 연주자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바흐 작품 중 하나인 관현악 모음곡 네 곡은 유독 훌륭한 음반이 많은 곡이기도 하다. 선구자 격이자 여전히 훌륭한 트레버 피노크(Archiv) 이후 최근에 나온 콘체르토 쾰른(Berlin Classics)과 카페 침머만(Alpha)까지, 특히 시대악기 연주는 어느 것이든 대단히 훌륭하며 선택의 폭도 넓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현재 남아있는 형태가 원본이라고 널리 인정받는 1번을 제외한) 관현악 모음곡의 기원과 원래 형태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쾨텐이나 바이마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래의 편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파울 돔브레히트가 이끄는 일 폰다멘토의 음반 역시 작품의 본래 모습을 되살린 악보를 연주한 것이다.
일 폰다멘토가 처음으로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아니며, 이미 앙상블 소네리(Avie)의 전곡 녹음과 포 센추리스 오브 바흐의 2번, 4번 녹음(Analekta)이 있다. 하지만 실제 초기 악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치히 시대의 후기 악보를 보고 추정한 것이기 때문에 2번 같은 경우는 복원 형태가 저마다 다르다.
모음곡 3번과 4번은 트럼펫과 팀파니 파트가 삭제된 형태로, 음악은 위풍당당한 분위기가 사라진 대신 춤곡 모음곡의 성격이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모음곡 3번만큼은 라이프치히 판본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가장 흥미로운 곡은 역시 모음곡 2번인데, 다른 두 연주가 우리에게 익숙한 플루트 대신 오보에를 독주 악기로 내세운 반면 일 폰다멘토는 (지휘자 자신이 오보에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이 독주를 담당한다. 디르크 판 달러의 연주는 매우 훌륭하며,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파트가 독주 악기보다 더 음역이 높다는 문제점도 생각보다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론 최종적인 판단은 음반이 아니라 실제 연주를 들어봐야겠지만 말이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일 폰다멘토는 반복을 대부분 준수했으며, 뛰어난 앙상블과 좋은 양식감, 활기찬 리듬 감각을 들려준다. 3번과 4번 모음곡의 경우 춤곡 양식을 강조한 판본에 맞추어 앙상블 소네리처럼 좀 더 생기 있는 템포를 택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있지만 서두르지 않는 원만한 흐름도 나쁘지 않다. 일 폰다멘토와 앙상블 소네리 모두 저마다 장점과 개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 선택은 2번 모음곡에서 어떤 악기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 같다.
- 월간 La Musica - 이준형
[ 수록곡 ]
1. Suite No.1 In C Major Bwv 1066
2. Suite No.2 In A Minor Bwv 1067
3.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
4. Suite No.4 In D Major Bwv 10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