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김수연 등 국내 아티스트의 음반에 반주자로 참여하여 친숙한 에프게니 보자노프의 쇼팽 리사이틀 음반이다. 쇼팽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반 클라이번 콩쿠르 등에서 파이널리스트로 검증된 안정된 기교와 깊은 음악성은 푸가리베라의 명 프로듀서 마이클 슈톡헴과의 만남으로 더욱 진한 정감의 쇼팽 녹음을 완성하였다. 특히 그의 감성적 뉘앙스와 <발라드>에서의 물 흐르듯 유연함, 소나타 3번의 명징한 터치는 놓치지 말아야 할 수연이다.
작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한 에브게니 보자노프의 쇼팽 음반이 선보인다. 84년 불가리아 태생의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2009년 반 클라이번 연주회에서도 최종결선에 오르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보자노프의 쇼팽은 샤프하고 냉철한 맛이 있다. 절제된 음색과 루바토 사용의 억제는 그의 연주를 상당히 이지적으로 채색하고 있는데, 다이아몬드처럼 잘 커팅된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쇼팽 연주로서의 극한 감정의 흐름, 꿈결 같은 시정의 짜릿함은 없을 지언정 상당히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맛이 있다. 첫 곡인 뱃노래부터 그렇다. 목가적인 맛이 물씬 풍긴다기보다는 연주를 위한 뱃노래라고나 할까. 청중과 같이 호흡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조형되어 나온 순도 높은 예술품인 것 같다. 인간적인 맛은 부족하더라도 그 자체로 뛰어난 뱃노래인데 폴로네이즈나 즉흥곡에서 한층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발라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장악하는 연주가 대단한 힘을 보이고 있다.
이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한 피아노 소나타 3번이 가장 압권이다. 충분히 넉넉한 호흡으로 전혀 흥분하지 않고 꼼꼼히 쳐내려가는 텍스트 독본에서 끈질긴 집념이 느껴진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쇼팽의 텍스트를 철저히 파헤친다는 느낌이다. 4악장 마지막에서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지 않고 각 패시지들을 음미하며 긴장의 강도를 키워나가는 사려깊음이 놀랍다. 2악장의 스케르초에서도 기교적으로 스케르초의 격한 느낌을 살려내기 보다는, 긴장감을 차근차근 만들어내는 뉘앙스가 깊이 다가온다. 곡 전체의 구성을 잘 조율해 완벽하게 깎아낸 조형술이 놀라운 연주다.
- 월간 La Musica - 김상호
[ 수록곡 ]
1. Barcarolle Op.60
2. Polonaise Op.71/2
3. Impromptu Op.51
4. Valse Op.64/3
5. Grande Valse Nouvelle Op.42
6. Ballade Op.47
7. Sonate N83 Op.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