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드보르작과 부인의 연이은 죽음에 바치는 슬픔과 분노의 명곡, 요제프 수크의 교향곡 2번 <아스라엘>의 절대 명연이 탄생하였다. 이미 마르티누 교향곡 음반으로 체코의 분방함과 특유의 애상을 강렬한 인상으로 그려내어 절찬을 받었던 거장 발터 벨러의 탁월한 감각이 다시한번 빛난다. 그 선이 굵은 다이내믹한 표현력은 전장의 죽음에 바치는 <죽음의 승리자에 대한 전설>에서 또다시 불을 뿜으며 영광스러운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
1905년에 드보르자크가 사망한 것은 그의 제자이자 사위였던 요제프 수크에게는 특히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드보르자크에게 바치는 교향곡을 쓰기로 하고 초고를 작성하던 중, 이듬해에는 아내마저 병으로 죽었으며 결국 ‘아스라엘’(죽음을 관장하는 천사 이름)은 장인과 아내를 추모하는 장대한 레퀴엠이 되었다. 웅대한 규모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후기낭만 교향곡 가운데 숨은 걸작이라 할 만하다. 녹음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하나같이 독자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호연들이며, 이번에 추가된 발터 벨러의 녹음도 이들과 대비되는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다.
1악장 첫머리를 여는 단조로운 첼로의 ‘아스라엘’ 주제(전곡에 걸쳐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는 완만하고 풍요롭게 제시된다. 그리고 이 대목의 인상이 나머지 전곡에 걸쳐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다시 말해 큰 스케일로 진행되지만 부드럽고 온건하다. 더 위압적이지만 투박한 페셰크/로열 리버풀 필하모닉(Virgin)이나 단정한 짜임새를 보여주지만 건조한 노이만/체코 필하모닉의 녹음(Supraphon)과는 다르다. 1악장 발전부 중간에서 악상이 일변해 주요 주제를 목관이 받아 연주하는 대목(여기서는 6분 37초부터)에서는 보통 투명함과 동화적인 몽환성이 강조되지만(키릴 페트렌코/베를린 코믹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CPO 녹음이 이러한 해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벨러는 템포를 오히려 가속함으로써 긴박감을 자아낸다. 이질적이기는 하나 설득력이 없지는 않으며, 아주 강력하지는 않으나 폭넓고 장중하게 연출된 악장 후반부도 훌륭하다.
2악장은 창백한 관능미가 돋보이며, 3악장은 대비가 다소 약한 느낌은 있지만 매우 유려한 흐름을 보여준다. 5악장 전반부는 완벽한 악몽을 연출하기엔 현이 너무 부드러운 감이 있으나 다채로운 음색 대비를 보여주며, 연주도 상당히 기민하다. 또 악상이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면서 영면을 기원하는 후반부는 지금까지 들었던 녹음 가운데 가장 부드럽고 따뜻하며 달콤하다. 일종의 보너스로 수록된 ‘죽은 승리자들의 전설’은 약 8분짜리 관현악곡으로, 간단히 말해 ‘아스라엘’을 연상케 하는 엄숙함, 황량함, 애도의 분위기와 빛나는 승리의 느낌이 멋지게 혼합된 흥미로운 작품이다.
녹음은 모든 면에서 적절하다. 이 신보에 대해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어떤 성과와도 견줄 수 있는 수준임은 분명하다.
- 월간 La Musica - 황진규
[ 수록곡 ]
1. Symphony No. 2 "Asrael", Op. 27: 1st Part: I. Andante Sostenuto
2. Symphony No. 2 "Asrael", Op. 27: 1st Part: Ii. Andante
3. Symphony No. 2 "Asrael", Op. 27: 1st Part: Iii. Vivace
4. Symphony No. 2 "Asrael", Op. 27: 2nd Part: Iv. Adagio
5. Symphony No. 2 "Asrael", Op. 27: 2nd Part: V. Adagio E Maestoso, Allegro Appassionato,..
6. Legend Of The Dead Victors, Commemoration For Great Orchestra, Op. 35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