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스카를라티의 쳄발로 소나타에 이은 올리비에 카베의 선택은 클레멘티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그는 <버림받은 디도>를 포함한 4곡의 단조 작품을 선택하여 기교적이고 화려한 리듬과 풍부한 선율 속 무거운 분위기의 극적인 음악의 매력을 빼어나게 표현하였다. 현대 피아노로 연주되었지만 정적인 느낌의 흔들림 없는 움직임과 음색은 초기의 포르테피아노를 연상시키고, “포르테피아노의 아버지”라 불렸던 클레멘티의 뛰어난 기교적 표현들을 감탄을 자아낼만큼 훌륭한 테크닉과 정교함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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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출신의 피아니스트 올리비에 카베는 마리아 티포를 사사한 신예로 작년 스카를라티 피아노 소나타를 레퍼토리로 자신의 첫 음반(Aeon)을 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놓은 것은 클레멘티의 소나타들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음반은 시대악기가 아닌 모던 피아노로 연주되었지만, 오리지널 악기의 정통성을 상쇄할만한 매력이 살아있는 연주이다. ‘버림받은 디도’(Didone Abbandonata)라는 표제가 붙은 g단조 소나타 op.50의 3번을 비롯하여 모두 단조의 곡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음반에는 ‘비극적 정경’(Scene Tragiche)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기도 하다.
카베의 클레멘티 연주는 모던 피아노가 지닌 약점들, 이를테면 액션이 날카롭지 못하거나, 과도한 레가토를 사용하게 되는 점을 충분하게 의식하고 있다. 테크닉이 좋은 그는 기본적으로 불필요한 레가토와 페달링을 자제하면서 상당히 정교하고 분절적인 음들을 만들어내면서 포르테피아노의 투명한 울림을 모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모던피아노의 음장감을 돋보이게 했던 하워드 셸리의 근작(Hyperion)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좋은 비교가 된다.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f샤프단조 소나타 op.25 1악장의 경우 제2주제에서 장조로 조성이 전환되어 비극적 특성이 그다지 강조되는 곡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슬픔은 느린 2악장에서 극대화된다. 이 느린 슬픔은 약하고 갸날픈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E장조의 강인한 인내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정교하면서도 빠른 템포의 아르페지오들이 즐거움을 더한다. 이어지는 b단조 소나타는 서두부의 느린 주제가 장송곡의 느낌을 준다. 길지 않은 악장들이 겹쳐지면서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낸다. 카베는 2악장에서 섬세한 터치와 세련된 루바토의 도입부로 즐거움을 안겨주지만, 곡은 이내 분절적이고 격정적인 g단조의 주제와 대비되며 드라마틱한 전개를 맞는다.
f단조 소나타는 이번 음반 중 가장 훌륭하게 연주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곡에는 하이든의 중기 소나타를 연상시키는 단호함과 단정함에 충실히 배합되어 있는데, 앞선 곡들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이 여기서는 보다 절제되고 있다. 모던 피아노의 깊은 음장감은 여기에서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쉬운 흐름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이 곡만큼은 포르테피아노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반음계적 진행이 돋보이는 2악장 도입부의 그로테스크함도 잘 살렸다.
음반 타이틀에 해당하는 ‘버림받은 디도’는 표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마치 말하는 것처럼 운율을 살린 프레이징이 돋보이는 곡이다. 카베는 이 서두부를 아주 측은한 여린 음들로 장식하는데, 음유시인의 비극 도입부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중개하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서사적 기법은 전 악장의 서두부에 걸쳐 있어 고전주의 시대의 고전 인용이 어떠한 음악적 수사학으로 이어지는지 흥미를 돋운다. 그러나 이어지는 제2주제부터는 극적인 대비를 강조하는 강한 타건과 힘있는 터치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마지막 악장의 은은한 피날레는 고전주의의 선율과 감정 처리법이 단조에서도 감정의 과잉을 경유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된다.
- 월간 La Musica - 이정엽
[ 수록곡 ]
1. Piano Sonata Op.25 No.5 (1-3)
2. Piano Sonata Op.40 No.2 (4-7)
3. Piano Sonata Op.13 No.6 (8-10)
4. Piano Sonata Op.50 No.3 (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