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도 우아한 자태로 무대를 빛내고 있는 소프라노 펠리시티 로트가 후기낭만시대의 명가곡 말러의 <뤼케르트 가곡>과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을 피아노 사중주 반주버전으로 불러주고 있다. 크리스티앙 파브르의 편곡은 오케스트라반주와 피아노 반주의 매력을 모두 담아 더욱 풍성함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졸데의 죽음"에서 들려주는 펠리시티 로트의 애절함은 실내악반주의 섬세함으로 더욱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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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슈만과 슈베르트 그리고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에 매진하던 펠리시티 로트가 말러와 바그너의 가곡에 도전했다. 관현악이나 피아노 반주가 아닌 피아노 4중주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재구성된 작품의 편곡은 4중주단의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티앙 파브르가 직접 담당했다.
실내악 버전의 반주부는 의외로 좋은 결과물을 들려주고 있다. 오케스트레이션의 서정적이고 풍부한 인상보다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세기말적인 독소가 더욱 드러나는 느낌인데 예를 들어 ‘Um Mitternacht’(한밤중에)의 고음 도입부를 하모닉스로 처리하여 음산한 느낌을 강조한 점이나 ‘Blick mir in die Lieder’의 활발한 느낌을 피치카토를 적극적으로 운용하여 밝은 색채로 채색한 점 등은 의외로 원곡보다 더욱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소 가벼운 음색을 지니고 있는 로트에게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의 앙상한 반주부는 다소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베젠동크 가곡집에서 이러한 무게감의 부재는 계속 이어지며 ‘Der Enge’(천사)에서 느껴지는 흐름의 정체감이나 트리스탄 화음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Im Treibhaus’(온실에서)의 급박한 진행은 필자의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듯한 이질감을 전해주기도 하여 안타깝다. 다만 ‘Stehe Still’(멈추어라)의 급박한 트레몰로 도입이나 극적인 효과는 어느 연주보다도 잘 살아있다.
마지막에 수록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이나 '이졸데의 죽음'은 하강하는 반음계의 음형을 효과적으로 잘 살린 느낌이다. 이어지는 음표와의 간극을 피아노의 물결치는 트레몰로와 글리산도로 표현한 점도 상당히 개성이 넘친다. 로트의 음성이 바그너를 부르기에 너무나 가볍다는 느낌도 없진 않지만 이졸데의 죽음이 항상 중압적일 필요가 있는 데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면 흡인력은 다소 떨어질지라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청명한 이졸데의 죽음도 들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 월간 La Musica - 노태헌
[ 수록곡 ]
1. Ruckert-Lieder (1-5) (Gustav Mahler)
2. Wesendonck-Lieder (6-10) (Richard Wagner)
3. Prelude Et Mort D`Isolde (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