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자료]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알프레드 코르토로부터 ‘새로운 리스트의 탄생’이라는 격찬을 받았고 아르헤리치와 폴리니라는 대 피아니스트를 키워낸 선생이기도 했던 피아노의 완벽주의자. 그의 진기한 연주기록이 담긴 귀중한 영상물이 나왔다. 아마 베토벤의 소나타 두 곡과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네 곡, 그리고 갈루피의 소나타를 담고 있는 이 영상물을 접하고 감격하지 않을 애호가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베토벤의 소나타 Op.2의 No.3은 미켈란젤리가 20대 초반에 처음 연주한 이래 평생 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주해왔던 레퍼토리인데, 악곡의 특성상 미켈란젤리한테는 꼭 맞는 레퍼토리이다. 힘차고 생기로 가득한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부터가 충격적인 흥분을 자아내며, 2악장 ‘아다지오’는 깊은 사색에 잠긴 베토벤을 경묘한 영상으로 떠오르게 한다. 스케르초는 놀라운 집중력과 명쾌한 타건으로 주제의 대위구조를 명쾌하게 드러냈다. Op.111의 No.32번은 Op. 109, 110의 소나타와 함께 베토벤이 <장엄미사>를 작곡하는 기간 동안에 쓴 작품이다. 모든 악장이 아름답지만 특히 주제와 5개의 변주로 되어 있는 2악장에서 정신이 고조되다가 점차 정화되어가는 과정을 기막히게 연출해낸 미켈란젤리의 솜씨가 가히 신기에 가깝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에서도 호로비츠, 리파티, 리흐테르, 페라이어 등 스카를라티의 매혹을 감동적으로 전했던 대 피아니스트들과 당당히 왕좌를 겨룬다. 스카를라티 악곡이 정말 정교한 필치로 씌어진 명작이라는 사실을 미켈란젤리의 치밀하게 분석된 연주를 통해 다시 한번 절감한다.

필자도 그랬지만, 이 DVD의 수록곡을 보고 애호가들이 가장 궁금해 할 레퍼토리는 역시 갈루피의 소나타일 것이다. 음악을 듣다보면 어떤 레퍼토리가 한 피아니스트의 전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갈루피 소나타와 미켈란젤리의 관계도 바로 그렇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오래 전 시 쓰던 한 친구가 이 곡을 무척 좋아했던 모습이 떠오르는데,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 소나타의 영롱한 아름다움을 듣고 단번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갈루피의 소나타는 음악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한 기품의 음악으로 들리는 것은 전적으로 미켈란젤리의 뛰어난 감수성 및 음악성 덕분이라고 본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통제력으로 수정처럼 맑은 음향을 들려주는데, 디지털 리매스터링 상태가 매우 좋아 흑백 영상과 잘 어울리지 않는 기분 좋은 언밸런스를 경험하게 된다. 1962년 영상이니 화면에 비친 위대한 거장은 42세 때의 모습이다. 8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