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쿤젤과 영화음악
핌의 HD 고음질 시디 가격이 높아서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고음질 시디에 손이 자주 가고, 음질의 만족감 때문에 청취 시간이 길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또 구매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음질은 부드러우면서 해상력이 높습니다. 그래서 칸서트 홀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듣는 느낌입니다. 이게 이 음반의 매력이지요.
SACD CDP, 192Khz/24비트CDP, 1비트스트림CDP와 HD CDP를 비교 시청해 보았습니다. HD음반이라서 그런지 HD CDP에서 가장 좋은 느낌입니다. 좋았던 느낌의 예를 하나 들어보면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색이 다르죠. 이 음색의 차이를 HD CDP에서 가장 좋게 느꼈습니다. 그만큼 해상력이 좋은 기기라는 생각입니다.
이 음반에서 받은 느낌은 호쾌함, 박진감, 화려함이군요. 이런 느낌을 도출해 내려면 오케스트라 악기는 자연히 금관악기가 선두에 서야겠지요. 그리고 타악기도 장단을 맞추어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음반에 수록된 곡의 주류악기는 금관악기이고요 타악기가 따라가듯 이끄는듯 진행됩니다. 클래식 곡 중에서 비슷한 곡을 하나 꺼낸다면 무소륵스키의 ‘전람회 그림’을 말할 수 있겠네요. 두리뭉실하면서도 쭉쭉빵빵한 소리에 쿵쾅거리는 박진감이 스모그 날씨 때문에 방에 갇혀버린 제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 주는군요.
지금부터는 제목에서처럼 에릭 쿤젠과 영화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클래식 아르티스들은 오랜 세월 동안 타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지까지 연주하는 성취감과 매우 큰 자부심,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다른 장르를 넘어볼 관심이나 여유를 갖지 못하지요. 에릭 쿤젤도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고민 끝에 영화음악을 지휘하기로 결정합니다. 그가 창단한 악단 이름도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Cincinnati Pops Orchestra)입니다. 악단 이름을 보니 각오를 단단히 했군요. 대중에 가까이 가고 싶는 오케스트라......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좀 의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에릭 쿤젤이 매우 바람직한 결정을 내렸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재까지 음악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대중과 함께하면서 대중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발디가 활동하던 그 당시 이탈리아는 오페라가 대중 속에서 성숙해 갔고 그 흥행은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헨델이 독일궁정음악장 직을 버리고 영국 런던으로 자신의 활동 무대를 옮긴 것도 런던에서 흥행하는 오페라가 있었고 흥행에 따르는 돈의 매력이 있었지요. 비발디도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고, 말러도 교향곡 작곡에 몰입하면서도 바그너처럼 오페라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음악과 돈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성공, 동서고금 음악인들의 로망이군요.
아마 영화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오늘날에도 연극과 오페라는 최고의 흥행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차세계대전 후 영화산업의 발달로 후진국인 우리나라도 읍 단위까지 영화관이 생겼으니까 영화음악의 발달로 인해서 우수한 명곡을 쏟아냈습니다. 곧 클래식의 큰 줄기를 이을 대세이었지요. 그러나 흑백 티비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영화는 사향길로 접어듭니다. 따라서 영화음악도 소강상태로 갑니다.
그렇게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꾸었죠. 티비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고화질 대형스크린과 고밀도 대형 사운드가 영화관으로 관객들을 모여들게 했고, 각 가정에는 고화질의 대형화면과 고음질 홈시어터, DVD가 보급되면서 영화산업은 이제 하늘을 날고 있는 경제성장의 블루오션이 되었습니다.
에릭 쿤젤이 이러한 영화산업의 성장을 예측하였는지 모르지만 음악은 바로크시대부터 현재까지 공연무대와 함께 발전해왔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는 매우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영화는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영상의 추억과 함께 영화음악은 대중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제임스 호너는 타이타닉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으며, 호워드 쇼어는 반지의 제왕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습니다. 영화음악의 대가들이 작곡과 지휘를 함께하는군요. 베토벤, 말러 같군요. 그러나 에릭 쿤젤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처럼 연주에만 몰두하는 지휘자입니다.
2013. 12. 6. 송 인 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