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방인 구스타프 말러
말러는 9개의 교향곡을 완성했고 10번째 작곡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면 “하느님이 데려 간다.”는 속설을 실천(?)했습니다. (그럴까봐서 제가 말러한테 10번째 교향곡을 얼른 완성하라고 했거든요.^^)
말러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조금 자라다 죽고 또 죽고 하여 슬하에 자식이 없었으며, 그의 형제와 자매들, 그리고 부모님들 모두는 말러가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말러의 부인이 그의 말년에 바람이 나서 말러를 멀리하자, 말러는 온갖 고통 속에 시달리면서 심장병이 생길만도 했지요. 저는 그의 곡을 들어봄으로써 그가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그런 병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애절한 곡을 지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미국에서 활동 중에 과로까지 겹쳐서 결국 그의 나이 51세에 사망하게 됩니다.(1911. 5. 18.) 40대 말러의 흑백 사진을 보면 세상을 떠날 듯한 노인네 얼굴인 듯, 피곤에 찌들어 있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러니 그의 아내가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났는가봅니다. 그리고 그는 보헤미안으로서 오스트리아의 이방인이었고, 오스트리안은 독일의 이방인이었으며, 유태인으로서 유럽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신대륙 미국에서 많은 애정을 갖고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자식들로부터 이방인이요, 아내로부터 이방인이었으며 결국 모든 세상으로 부터 이방인이 되어 버린 지극히 불쌍한 천재 작곡가이자 지휘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남긴 곡들은 우리 가슴 속에 내재된 인간 본성의 슬픔 감성과, 죽음 앞에선 절망을 애절하게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말러의 곡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말러가 미국 연주 생활에서 많은 애정을 보이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말러의 전곡을 녹음으로 남긴 지휘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선호도가 가장 높은 그의 음반이고 보면 번스타인이 말러에 쏟은 애정은 말러가 타국에서 애절하게 죽은 슬픔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번스타인 음반이 선호도가 높은 이유 몇 가지는 이렇습니다. 그의 연주곡은 단원들의 철저한 연습이 느껴지는 정갈한 음의 표현과 군더더기 없는 하모니입니다. 비탄과 격앙된 표현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하모니는 이 음반의 절대 장점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맘모스 오케스트라답게 넓게 느껴지는 무대와 공간감이 말러의 곡 분위기를 한층 살려 줍니다. 흔히 오디오 성능을 따질 때, 음장감이 좋다 나쁘다 하시는데요, 대편성의 곡에서는 연주 자체가 주는 음장감은 필수라 하겠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선호하는 이유 중하나가 바로 대형 오케스트라에서 펼쳐지는 음장감 때문이지요.
60년대 녹음을 마친 번스타인의 연주를 넘어서고자 하는 지휘자들이 지금도 말러에 애정을 쏟고 있지만, 아직도 그의 건재함을 말러 매니아들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DVD로 말러의 전곡이 선을 보였지요. 그 때 기회를 놓치신 분이라면, SACD로 출시된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워낙 유명한 명연주로 남긴 녹음이라서 앞으로도 계속 출시되겠지만, 인간의 생명이 마냥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니,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시점을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말러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께 번스타인의 말러 전곡을 추천합니다.
말러의 곡 분위기는 슬픔, 절망, 비애, 탄식, 체념, 회한, 그리움, 기다림 등등 이렇습니다. 따라서 환희, 기쁨, 행복, 즐거움 등의 분위기를 원하시는 분이 말러를 선택하신다면 대단이 실망하시겠지요. 부모님 모두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셨거나, 남편, 혹은 아내를 사별하신 분이나, 형제 자매를 잃으신 분이나, 사업으로 인생의 험한 고초를 겪으신 분들이 들으시면 공감하실 겁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공감대가 커지는 말러의 곡입니다.
2008. 03. 09 송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