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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음향의 지평선 너머도 사라지는 비극적 서사시
 번호 : 3196 | ID : | 글쓴이 : FineAV | 조회 : 14121 | 추천 : 97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24번 / 이스토민 ; MOZART: PIANO CONCERTO NO.21 & 24 / OSTOMIN (HRx)
68,600 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24번 / 이스토민 ; MOZART: PIANO CONCERTO NO.21 & 24 / OSTOMIN (HRx)
  • HRx 176.4kHz/24bit HDCD 레코딩 마스터를 PC에서 을 수 있는 DVD-R data disc
  • 컴퓨터의 사운드 카드가 176.4kHz/24bit가 지원이 되어야 진정한 스튜디오 마스터 레코딩 음질을 들을 수 있으며 디지털로 출력할 경우 DAC가 필요하다.
  • HRx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PC DVD-R 드라이버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미디어 플레이어는 WAV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미디어 플레이어가 설치되어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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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퍼런스 리코딩스의 HRx 에디션은 24비트/176.4kHz 포맷의 스튜디오 마스터 파일(WAV)를 DVD-R 데이터 디스크에 담아서 판매하는 제품이다. 따라서 이 디스크는 CD 플레이어로는 재생할 수 없고, 디스크에 담긴 음악 파일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복사하여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미디어 플레이어(예를 들면, MS 미디어 플레이어, 아이튠즈, 소닉 스튜디오의 아마라, 퓨어 뮤직의 채널 D, 오디바나, JRiver, 푸바 2000 등등), 그리고 린의 클라이맥스 같은 디지털 파일 플레이어에서 재생할 수 있다.

    이번에 리뷰하는 HRx 음반은 2009년 12월에 첫 번째 에디션으로 발매한 것 중 하나로서,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 ‧ 24번 녹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음반의 내지를 살피다가 재미있는 경고문을 발견했다. 아마도 당시로서는 최초로 발매하는 음반 형식이었던 만큼 레퍼런스 리코딩스 측에서도 상당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적절치 않은 셋업과 재생으로 인하여 컴퓨터와 오디오 시스템에 손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디오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할 때 컴퓨터 음악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을 것을 권합니다. 당신이 컴퓨터 음악 재생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개척자가 된 것에 대하여 박수를 보냅니다.”

    컴퓨터 오디오 재생이 일상 풍경이 되고 있는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문구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고문을 붙여 놓은 것이 불과 5년 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 동안 하이파이 오디오의 환경이 급변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젊은 애호가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유진 이스토민은 연조가 깊은 애호가들에게는 추억의 아티스트라고 할 만하다. 1925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3년에 타계한 그는 1960‧70년대에 아이작 스턴과 레너드 로즈와 함께 활동했던 ‘이스토민-스턴-로즈 3중주단’으로 명성을 날린 러시아계 피아니스트이다. 이 디스크에는 1995년 10월 10일, 와이오밍 주 바슬의 성 토머스 센터에서 이루어진 연주를 담고 있다.

    제라르 슈워츠가 지휘하는 시애틀 심포니와 협연한 이스토민의 모차르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형적인 레퍼런스 리코딩스 사운드이다. 풍성하며너도 깊이 있는 저역을 바탕으로 하여, 자극성과는 거리가 먼 섬세한 고역, 그리고 살짝 억제된 중역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만들어 내는 광활한 공간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이 레이블의 전형적인 음향은 각 악기군의 디테일을 명료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음악 전체에 대한 조망감이 뛰어난, 각 악기군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를 두고 공연장에서 듣는 실제 음향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애호가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음향 특성은 24비트/176.4kHz 포맷 재생에서 한층 분명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결과 각 악기군의 음색과 음영이 한층 섬세한 표정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러한 면모는 특히 목관 악기에서 두드러진다. 그리고 피아노의 음색, 선율선, 다이내믹 또한 한결 여유 있는 음향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연주는? 이스토민과 슈워츠의 모차르트는 전전(戰前) 세대의 낭만주의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해석을 보여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음악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중시하는, 신축성이 좋은 템포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들숨과 날숨의 유연한 조화를 이룬 선율선과 다이내믹을 용해하는 유연 자약한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이들의 연주에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해 둔다면, 이스토민의 모차르트에서는 특정한 연주 스타일에 입각한 해석보다는 악곡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자유롭게 조이고 푸는 즉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현장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스타일의 모차르트는 성공을 거두었을까? 관점과 취향에 따라 호오(好惡)가 엇갈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음악 그 자체의 맥박과 호흡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흥미진진한 해석이라는 찬사를 듣겠지만, 모차르트 음악이 속한 시대성 또는 양식성을 우선하는 시각으로 보면 낭만주의 스타일에 지나치게 경도된 시대착오적 해석으로 보일 것 같다.

    이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답하고 싶다. 제21번은 완급 자재한 선율미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해석을 담고 있지만, 필자의 귀에는 피아노 독주와 오케스트라 반주 모두 모차르트라기보다는 슈만의 협주곡처럼 들린다. 모차르트 음악에서 살아나야 할 전아한 형식미를 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반면에 제24번 협주곡으로 오면, 이러한 해석은 오히려 장점으로 돌변한다. ‘이스토민/슈워츠’ 콤비는 이 작품에 담긴 모차르트 내면의 음울한 정서를 유장한 서사성 속에 절묘하게 용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들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EMI) 서곡을 처음 접했을 당시의 충격이 떠오른다. 그처럼 부자연스럽게 ― 또는 불편하고 생경하게 ― 들리던 트리스탄 서곡이 그처럼 자연스럽고 ― 그리고 타당하게 ― 들려오던 놀라운 경험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동안 수십 종이 넘는 모차르트의 제24번 협주곡을 감상하면서 필자가 느꼈던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이스토민/슈워츠’ 콤비가 한 방에 날려 버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처럼 자연스러운 어조로 역설하는 제24번 협주곡의 진실은 무엇일까? 필자의 귀에는 ‘저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음향의 지평선 너머도 사라지는 비극적 서사시’였다.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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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체미가 살아 있는 원근감과 자연스러운 공간감, 그리고 각 악기의 풍부한 음색을 명료하게
      분명한 공간감과 자연스런 울림이 무척 리얼하고 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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