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톨 DAC200 전면 (은색 마감)
요즘에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디지털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USB를 지원하는 고해상도 DAC 분야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가격대로 보면 5~10만 원대의 초저가형 제품에서 시작하여, 그 위로 올라가 보면 20~40만 원대에 걸쳐 있는 보급형 제품이 있고, 그 위에는 ‘본격’이라는 접두어를 붙일 수 있는 50~100만 원대의 엔트리 레벨의 하이파이 제품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중급 및 하이엔드 제품들이 있다.
프랑스 아톨의 톱 모델 DAC200는 어떤 범주에 속할까? 일단 가격만 놓고 보면, 엔트리 레벨에서 벗어나 본격 오디오의 범주로 들어서는 초입에 자리를 잡고 있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기능과 음향의 완성도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DSD 포맷 재생을 지원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DAC200은 기술 내용, 기능성, 그리고 음향의 관점에서 본격 오디오 애호가의 욕구를 거의 만족시킬 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춘 기기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기능부터 살펴보면, DAC200은 웬만한 하이엔드 클래스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프로용 DAC도 범접하기 힘든 풍부한 디지털 입출력 계통을 갖추고 있다. 총 10계통에 달하는 입출력을 갖추고 있는데, 디지털 입력으로는 AES/EBU 1계통(XLR), 동축 SPDIF 2계통(RCA), 광 SPDIF 3계통(Optical), USB 인터페이스 1계통(이상 24비트/192kHz 대응), 그리고 USB 동글(시리얼)을 이용하는 와이어리스 인터페이스 1계통(16비트/44.1kHz 대응, 2.4GHz 방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디지털 출력으로는 SPDIF로 동축과 광 각 1계통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아날로그 출력으로 오면 총 3계통으로 밸런스와 언밸스, 그리고 헤드폰 출력(미니)을 장비하고 있다. 이 정도의 사양이라면, 클록 제너레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단자가 왜 없냐는 불평이 나올 것 같다.

아톨 DAC200 후면
이 기기에서 또 한 가지 특필할 만한 것으로는 레벨을 80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볼륨을 갖추고 있다는 점인데, 이 기능은 여러 측면에서 유용하다. 오디오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프리앰프를 생략하고 DAC200을 파워 앰프와 직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능은 그보다 활용도가 훨씬 높다. 그 이유는 다양한 디지털 입력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음량과 대역 밸런스를 찾기 위한 ― 쉽게 말하면, 디지털 기기의 출력과 프리앰프의 입력 레벨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한 ― 유용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기기는 입력과 볼륨을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는 리모컨까지 제공하고 있다.
다음으로 내부는 어떨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아주 견실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DAC 칩부터 살펴보면, DAC200은 24비트/192kHz를 지원하는 버브라운 PCM1792를 탑재하고 있다. 그리고 DAC 회로와 전원부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기본적으로 풀 밸런스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트랜스를 네 개나 사용하는 등 어느 측면에서 보나 충실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DAC200은 어떤 음향을 들려주는가? 이번 시청에서는 필립스의 CD 플레이어 LHH 700을 트랜스포트로 사용하여 동축 접속과 소닉 스튜디오의 아마라 3.0을 이용하여 USB 접속을 테스트했다. 우선 전반적인 경향부터 살펴보면, 이 기기는 일반적인 디지털 입력(동축)과 USB 입력 사이의 큰 차이를 보여 주지 않았다. 어느 쪽을 재생하든지, 아톨 특유의 명료한 음향 윤곽과 선명한 색채를 전면에 부각하는 경쾌한 음향 이미지가 보기 좋게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머뭇거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쏟아내지도 않는 적극적인 발성이었다.

아톨 DAC200 내부
이 방식으로 가장 먼저 시청한 음악은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850이었다. 오리지널 녹음 자체가 그렇지만, 브렌델 특유의 풍성한 음색이 과부족 없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여 준다. 풍성한 저역, 올이 그리 굵지 않고 윤곽이 그리 또렷하지 않은 몸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여운과 온화한 공간감… 이 모든 특성이 오리지널 녹음을 명료하게, 그리고 유연한 표정으로 연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어우러짐이었는데, 선율선의 교차와 얽힘을 명료하게 보여 주면서도, 이들 선율의 조화감이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중역의 표현력이 다소 약한 듯하여 음향 이미지의 입체감이 조금 부족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녹음 음향 자체가 그런 것일까? 아니면 DAC200의 특성일까?
이러한 의문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라이브 녹음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이쪽으로 오자 공간감이 아연(啞然) 투명해지고 중저역이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입체감이 향상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돈 헨리의 보컬이 조금 소극적으로 흐르고, 음색의 농도가 좀 더 짙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타악기의 음색과 중량감은 모두 합격점을 줄 만했다. 그러나 이 음악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화려한 표정으로 찰랑이며 떠오르는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이 살짝 뒤로 물러선 보컬과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주파수를 짚어보면, 1kHz를 중심으로 한 중역대에서 중고역으로 흐르는 대역을 살짝 강조하는 음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시청한 음악은 여성 보컬 사라 맥라클랜의 이었는데, 이쪽으로 오면 DAC200은 또 다시 새로운 표정으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통상보다 리버브의 시간이 살짝 길어진 듯한 모습으로 한층 넓어진 공간감을 연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맥라클랜의 감미로운 음색을 명료한 이미지로 살려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양상은 라디오 헤드의 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연주하는 음악 소스에 따라 이처럼 특성과 표정을 달리하는 음향을 들려주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간단히 말하면, 음악과 녹음 특성에 대한 DAC200의 대응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정감과 유연함의 조화가 돋보이는 상하 대역의 밸런스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화려함과 명료함을 깔끔하게 실어 올리는 전형적인 ‘아톨 사운드’를 주장하지만, 오리지널 녹음의 음향을 무시하는 법이 없는 정확한 반응력을 이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USB 접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여기서 가장 먼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음향 조형에서 동축과 USB 접속 사이의 위화감 또는 이질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인데,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들어 보면, USB 접속에서 100Hz 이하의 저역과 500Hz 이하의 중저역의 중량감과 존재감이 살짝 약해지는 기미를 보여 준다. 그 결과 음악의 흐름이 한층 경쾌히지고, 표정 또한 좀 더 또렷해지는 경향을 보여 준다. 이러한 면모는 벨체아 4중주단이 연주한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6번, 그리고 프란스 브뤼헨이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제39번 교향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베토벤>에서는 벨체아 4중주단 특유의 거침없는 선율미를 경쾌한 어조로 풀어가는 모습이 볼 만했던 반면에, <모차르트>에서는 다른 기기보다는 각 악기군을 전면으로 끌어내면서 입체감이 넘치는 앙상블을 새김이 또렷한 흐름으로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마디로 이들 클래식 음악에서는 매듭과 풀림이 명쾌하게 교차하는 음향을 들려주었다.

아톨 DAC200 전면 (검정색 마감)
마지막으로 고해상도 음원에서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는가?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하위 포맷과 아무런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음향 튜닝 능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정보량이 증가하고 다이내믹의 낙폭과 펀치력이 한층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하이 레졸류션 포맷에서도 아톨 사운드의 개성과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는 음향을 들려주었다. 캐롤 키드가 노래하는 의 2008년 버전(24/96), 그리고 마이클 스턴이 지휘하는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레퍼런스 리코딩스, 24/176.4) 녹음을 감상해 보면, CD 포맷보다 명료한 음색과 견고한 음향 몸체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아톨의 DAC 중에서 최상위 모델인 DAC200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결론을 내리면, DAC200은 본격 디지털 오디오 재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애호가를 위한 기기라고 할 수 있다. 아톨 특유의 명료함과 강직함, 그리고 경쾌함과 안정감이 깔끔한 조화를 이룬, 명도가 높은 음향을 적극적으로 연출하는 기기가 바로 DAC200이다. 이쯤 되면, 최근 유행하는 DSD 포맷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두고 아쉬움을 표하는 애호가들이 적지 않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DAC200이 보여 주는 음향의 완성도, 그리고 가격 대비 성능은 동급 최강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DAC200으로도 DSD 포맷을 재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저라면, 소닉 스튜디오의 아마라 3.0을 재생 소프트웨어로 사용하면 DSD 음원을 실시간으로 PCM으로 변환한 음향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시청에서 필자는 이 방식으로 DSD 음원을 테스트해 보았는데, 여기서도 기대 이상의 성능과 음향을 들려주었지만, 순수 DSD 재생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음향에 대한 평가는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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