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과 음반사 모두 고대하는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 녹음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하는 것일까. 2008년 하반기에 새로 발매된 장한나(26)의 음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발디 협주곡이었다. 이 EMI 음반에 실린 4곡의 비발디 협주곡을 들고 음반 협연단체인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LCO)와 함께 장한나는 고국 무대를 찾았다.
시대악기 연주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현대악기를 연주하는 장한나는 그녀 특유의 개성과 장기를 얼마 만큼 비발디의 작품에 불어넣는가가 성공의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장한나와 LCO의 비발디 연주는 비교적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장한나와 LCO는 어떤 새로운 해석의 비발디라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장한나의 스타일에 의한 장한나 특유의 비발디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암보로 무아지경에서 연주하는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빠른 악장의 드라마틱함과 콘티누오(Continuo; 통주저음) 파트와 교감하면서 실내악적 앙상블의 재미를 느끼게 한 느린 악장의 서정성의 대조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슷비슷한 곡들 사이에서 개성을 찾아 해석에 반영하는 그녀만의 음악적 혜안이다.
먼저 LCO 만에 의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D장조 K 136이 연주되었다. 시대악기 연주를 연상시키는 약간 빠른 템포의 활기 넘치는 이들의 연주는 장한나가 무대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장한나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오른쪽 끝에 배치한 제2바이올린 파트의 활력이 도드라졌는데, 특히 제1바이올린 파트와 서로 주고받는 스테레오 효과의 패시지 연주는 짜릿함마저 느끼게 했다.
장한나의 비발디 협주곡 음반에서 처음 수록된 2곡이 1부에서 연주되었는데, 특히 이례적으로 첼로독주의 느린 악장으로 시작하는 A단조 RV 420은 악장마다 곡의 특성이 잘 구현되었다. 느린 악장의 절제미와 빠른 3악장의 폭발적인 열정의 대조는 극히 인상적이었다.
1부 마지막 C장조 RV 400은 앞선 RV 420보다 12년 정도 뒤에 작곡된 곡인 만큼 내용적으로 깊은 서정의 느린 악장을 가지고 있다. 이 매력적인 악장의 선율을 연주하는 장한나의 운궁은 느린 선율을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감이 넘쳤다.
2부에서는 헨델의 합주협주곡 Op.6의 제11번이 먼저 연주되었는데, 1부에서의 모차르트 만큼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활기도 부족하고 즉흥성이 떨어지는 면에서 약간 지루함을 주었다.
2부에서는 음반에 수록된 마지막 두 곡의 비발디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D장조 RV 403과 A단조 RV 418은 비발디의 중·후반 작품들로 선곡의 묘가 앞서는 작품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력이 요구되는 작품으로 때로는 독특한 리듬의 구사나 정서적 표현이 돋보였다.
비발디 협주곡들은 느린 악장에서 콘티누오 파트와 대화하는 독주악기의 매력이 각별한 작품이다. 문제는 독주악기와 주요 콘티누오 악기인 첼로가 음역적으로 겹친다는 점이다. 여기서 독주를 방해하지 않고 실내악적 울림을 만들어 낸 LCO의 첼로 콘티누오 주자 조엘리 쿠스의 노련한 서포팅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현대악기에 의한 비발디의 협주곡 연주였지만 테오르보(theorbo)와 바로크 기타를 번갈아 사용하여 콘티누오 파트를 음량적으로나 음색적으로 보강한 점은 무척 매력적이고도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쳄발로와 음량 밸런스가 맞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비록 무대 뒤쪽에 대형 음향 반사판을 마련해서 큰 공연장의 핸디캡을 줄여보려 했지만, 소편성의 비발디를 듣기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너무 ‘대(大)극장’이었다. 음향적으로 디테일한 파악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장한나의 음악적 즐거움을 전파하는 능력은 그러한 공연장의 핸디캡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LCO 단원들과 교감하며 에너지감 넘치는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준 장한나는 그 강렬한 흡인력으로 청중들을 즐거운 비발디의 바이러스에 감염시키고 말았다.
이것은 장한나 자신이 즐거운 비발디를 충분히 즐기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연주하는 도중에 간혹 미소를 지으며 오케스트라 파트를 지켜보며 교감하거나 발장단을 구르며 음악을 느끼는 모습에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앙코르 피스로 가장 강렬한 악장인 RV 420의 3악장이 연주되었고, 비발디의 모테트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를 첼로로 편곡하여 들려주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중들의 큰 호응에 대한 보답으로 다시 RV 400의 3악장을 앙코르로 들려주면서 발구르기까지 하는 즐거운 모습을 연출하였다.
8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9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이 남아있다.
음악칼럼니스트 bach@paran.com
송인관
장한나가 연주한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단조OP.125`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작품 녹음반(EMI)을 요즘 즐겨 듣고 있습니다. 활달하고 명랑한 그녀의 성격이 그려지는 연주입니다. 가을에는 러시아 작곡가 곡들이 대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스승 로스트로포비치도 이 곡의 연주반을 남겨 놓았습니다. 스승의 연주와 제자의 연주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괜찮네요.
송인관
로스트로포비치도 비발디 협주곡을 녹음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첼로 연주곡이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스승의 연주 곡과 많이 겹치는 것을 보니, 세상을 떠난 스승을 그리워 하는 듯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