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일은 얼음공장에 불난 일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에사 페카 살로넨(50) 지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LA필)의 공연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차갑고 서늘한 정열과 뜨거운 감성이 교차한 이 날의 공연은 레퍼토리 선정에서부터 이미 그러한 요소를 듬뿍 담고 있었다. 인종, 언어 등에서 다문화 도시를 상징하는 미국 서부 거대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답게 LA필은 스트라빈스키, 시벨리우스, 라벨 등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청중에게 선사했다.
북구의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시정, 중부 유럽 프랑스를 대표하는 섬세함과 온화함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의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미를 보여주는 근대 오케스트라 곡들을 LA필은 현대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기능미로 소화하며 곡 해석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LA필 내한 공연은 16년 동안 함께 해온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과의 마지막 투어 연주회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차세대 거장 구스타보 두다멜(27)이라는 새로운 지휘자를 맞는 LA필, 그리고 새로운 작곡 일과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찾아가는 살로넨 그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별여행은 당연히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이 가장 장기로 삼는 레퍼토리를 프로그램으로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LA필의 오케스트라 배치는 여느 미국 오케스트라들에 비해 현악파트의 배치가 특이했는데, 많은 러시아 오케스트라들이 즐겨하는 제 1 바이올린 뒤쪽에 첼로에 더블베이스를 배치함으로써 콘트라스트가 강한 깊은 울림을 표현하려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출세작 ‘불새’를 예견케 하는 ‘불꽃놀이’를 첫 곡으로 연주한 LA필은 4분 남짓의 이 짧은 곡을 통해 이날의 연주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미리 보여주었다. 탁월한 앙상블과 섬세한 목관연주를 통해 연주 불능에 가까운 이 난곡(難曲)의 변덕스런 하모니를 명쾌하게 들려준 것이다.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의 모국인 핀란드 출신의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고별 투어의 당연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워낙 곡이 어려운 탓이었을까? 사라 장(28)의 바이올린 협연으로 이루어진 공연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오케스트라의 일사불란한 모습과 열정적이면서도 투명한 음향에 비해 사라 장은 오케스트라를 쫓아가기 바쁜 인상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음정은 불안했고 실수마저 보였다.
2부에서는 라벨의 음악들로 오케스트라의 색채적 매력을 맘껏 발휘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각색한 내용인 발레음악 ‘어미 거위’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섬세하고 정제된 표현의 목관파트와 심도 깊은 저음 악기들의 매력은 지휘자의 정확한 박자 젓기 속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듯한 동화적 정서를 환상적으로 구현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라벨의 볼레로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이다. 아주 조용하게 시작한 곡은 끝의 포효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크리센도를 어떻게 잘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앞서 연주된 ‘어미 거위’에서처럼 마치 관악기 주자들의 개인기 발표장 같은 인상적인 모습과 살로넨의 오케스트라 구축력이 어우러진 압도적인 연주는 시종일관 ‘볼레로’의 긴장감과 즐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앙코르 피스로 연주된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그리고 파야의 ‘불의 춤’을 통해 곡이 요구하는 특유의 절묘한 리듬감과 색채감으로 청중의 큰 박수갈채를 이끌어 내었다.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감성을 재차 만나는 순간이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bach@paran.com
송인관
사라장이 어렸을 때 처럼 사람을 놀래키는 일이 최근엔 드물어졌다는 것이죠. 얼마전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비발디 사계를 연주하려고 준비했다가, 안네 소피무터가 비발디 사계를 들고 나오니까 레퍼토리를 바꾸었죠. 좀 더 열정적이었으면 좋겠네요. 아직까지 국내 바이얼린 연주자 중에서 정경화를 넘어서는 인재는 없는 듯 합니다. 장사라의 비발디 연주 녹음도 좀 그렇고.....장사라 팬님 여러분 죄송해요. 그리고 김범준님 잘 읽고 갑니다. 종종 글 올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