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텔 RB-1090 파워 앰프의 장단점

심심한 저녁입니다. 오늘은 로텔 RB-1090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좀 해보려고요. 단종되어서 출시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 다시 시장에 얼굴을 보이고 있네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주고 싶어서요.

이 녀석을 입양해서 탄노이 GRF메모리와 함께 7년 세월을 생활해 왔으니 모든 성격을 다 알고 있다는 얘기지요. 이 녀석 스펙을 보면 채널마다 380W 출력에, 소비전력 1200W, 최대출력 1000W이상, 극히 낮은 왜율, 125db 최고 수치의 신호대 잡음비, 초광대역10Hz~100Khz인 주파수 재생 범위, 측정되지 않는 디스토션, 댐핑팩터 1000, 균형잡힌 대역의 밸런스, 투명한 음, 빠른 대응력, 우수한 해상력, 커다란 음의 부피감, 정확한 정위감, 저역의 묵직한 무게감 등등 하여 최고의 스펙을 자랑합니다. 이런 성능에 도달하려면 많은 물량 투입이 불가피하고 로텔의 기술 수준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죠. 그런데.........그런데 이 녀석의 가격을 보면 뭔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00만원대 정도에서 형성되는 스펙이 아니라 하이엔드에서 나타나는 가격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로텔 회사가 스펙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자선 사업을 하거나 미래를 위하여 전략적 판매라도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로텔 RB-1090은 모든 면에서 아주 우수한 앰프입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단점은 고역에서 음의 직진성이 약간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음의 색상은 밝고 쾌활하며 더러는 열정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취향을 선호하는 오디오 파일이라면 장점이 될 수도 있겠으나 고역의 직진성 때문에 여린음 표현에 약점을 나타냅니다. 고역대 음은 부드럽고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여린 음이어야 고역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좀 강하게 끌고 간다는 거죠. 그래서 장시간 음악을 듣기에 좀 불편하실 겁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볼께요. 플륫의 음은 고역의 음이면서 매우 부드럽고 우아한 음입니다. 그러나 고음에서 직진성을 나타내는 앰프들은 이 플륫의 음을 좀 더 곱게 내면서 오보에 악기에 닮은 듯한 소리를 내어 줍니다. 부드럽고 우아한 플륫 음에서 이탈한다는 거죠. 즉 고역에서 이런 성향을 나타냅니다.

이 녀석은 고역의 직진성, 이것 이외에 다른 단점은 더 이상 없습니다. 정말 아쉽죠. 이것만 해결되면 그냥 단숨에 하이엔드로 비약할 수 있는 제품인데요. (그러면 치솟는 가격 때문에 저와 만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로텔회사가 왜 여기까지만 손을 대고 시장에 출시했는지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클래식 분야가 아니라면 이 단점은 단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감도 있습니다. 어쩌면 AV쪽 성향에 비중을 두고서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기로 경영 방침을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하이엔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브랜드가 많으니 틈새 시장의 공략이라는 전략도 무시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죠. 난이도가 높은 기술로 해결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역대 음만을 따로 분리해서 직진성을 확산성으로 바꾸는 기술이 간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단점은 프리 앰프를 잘 선택하거나 이퀄라이즈의 조합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디지털 이퀄라이즈를 구입해서 고역대 음의 에너지를 4데시벨 정도 줄여 보니까 고역대의 직진성이 약화 되었지만 문제는 또 발생했습니다. 음대역의 밸런스가 변형되어서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곡들이 모두 다 차분해지는 문제점이 발생하더군요. 그래서 이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앰프를 선택해야 한다는 최종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5년 걸렸습니다. 아마 예전에 21년 동안 리복스 앰프와 탄노이 GRF메모리 스피커의 조합에서 익숙해진 클래식 사운드 경험이 없었다면 10년 더 지난 다음에 불편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사운드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도 메인 앰프로 로텔 RB-1090과 탄노이 조합으로 제가 갖고 있는 다른 시스템( 인켈AX7RMK2+B&W+B&W서브우퍼, 케인진공관서울스페셜버젼+탄노이스티어링SE, 리복스+탄노이센시스톨보이 그 밖에 등등 [좋아하는 순] )보다 우수한 음향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죠. 그 이유는 또 뭘까요?

그 이유는 탄노이메모리 스피커 덕분입니다. 탄노이스피커의 창문짝만한 그릴을 벗겨보면 음향 조절 기능이 두 가지 붙어 있는데 그릴을 벗기고 입히기 불편해서 무시하고 지내다가 작년에 알아낸 기능입니다. 제가 그토록 갈망하던 고역의 직진성을 제거할 수 있는 ‘Treble Roll Off ' 기능이 있었습니다. 눈이 번쩍하며 순간 아찔한 황홀감에 당황했죠. 고역의 직진성을 최고로 낮출 수 있는 곳으로 설정했더니 바이얼린 소리, 플륫 소리, 소프라노 색스폰 소리, 조수미의 목소리 등등 고음 영역대의 악기 고유의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결과물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고영역대 음들이 매우 순해졌습니다. 이 후부터 로텔을 대하는 저의 태도와 감성은 매우 달라졌지요.

지금도 여전히 만족하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텔RB1090이 그 동안 저한테 주었던 이미지 때문에 200W 출력에 로텔 만큼의 스펙을 갖고 있고 고역의 음이 순한 제품으로 바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씩 듭니다.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파워 앰프 하나만 하더라도 천만대 이상으로 그 앰프 앞에 제 아내 얼굴이 자꾸 그려지는군요. 사실 재차 느끼는 것인데 로텔RB1090만한 물건도 그 가격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로텔RB1090과 탄노이메모리의 만남을 천우신조로 알고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야하겠습니다. 정말 이런 경우도 다 있네요.

2012년 2월 28일 송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