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바로크 류트 음악을 기초로 만들어진 레스피기 <고풍의 춤곡과 아리아>는 우아하고 달콤한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두 대의 하프로 다시 편곡하여 류트작품 원곡의 느낌이 더욱 화려하게 재현하고 있는 음반이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시실리아나>의 애잔한 선율은 하프의 은은한 울림으로 마음이 녹아든다. 존 토마스의 낭만적 <그랜드 듀엣>과 팝아티스트 에릭 클랩튼의 기타 작품 <시뉴>에 이르기까지 하프의 매력을 가득 담은 음반이다.
ATMA에서 하프 독집과 실내악곡집을 내놓았던 제니퍼 스워츠가 이번에는 여러 앙상블에서 함께 연주해온 로리 게멜과 함께 하프 이중주곡집을 선보였다. 스워츠는 모던 하프의 화려한 음색을 효과적으로 살린 근대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녹음해왔지만, ‘공작새의 정원’이라는 제목의 이 새로운 앨범에서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담아냈다.
첫 곡은 레스피기의 세 개의 ‘옛 춤과 아리아 모음곡’ 중 다섯 곡을 선택하여 하프 듀오를 위해 편곡한 곡으로, 하프의 영롱한 음색을 내세우기보다는 옛 리르의 추억을 회고하는 듯 단아하게 표현했다. 올 해 나이 40인 캐나다 퀘벡의 작곡가 카롤린 리조트의 ‘라가’는 미니멀 음악과 같이 반복되는 패턴이 만드는, 마치 정지화면을 보는 듯한 단편적인 인상에 집착한다. 오픈 스트링의 하프는 잔향 시간이 길어서 꿈속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과거의 미니멀 작곡가들이 왜 하프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운 정도로 효과적이다.
스워츠의 장기가 발휘되는 곡도 포함되어있다. 하피스트 출신의 작곡가 베르나르 앙드레의 곡이 이 음반의 타이틀로 사용된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음반 자켓에 그려진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과 같이, 프랑스의 인상주의 스타일의 다채로운 음향 놀이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공작새의 정원’에서 한 때를 보냈던 제우스와 헤라와 같이 스워츠와 게멜을 이 음악에 숨결을 불어넣은 신들의 현현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19세기 웨일즈의 하프 신동이었던 존 토마스의 ‘그랑 듀엣’은 진정한 ‘하프를 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작이다. 그는 다른 영국 작곡가들처럼 민속적인 요소보다는 고전적인 양식과 세련된 선율을 추구했는데, 프랑스에서 공부한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앨범의 중심에 위치하여 무게 중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대작의 틈바구니 속에서 스워츠가 위촉한 앤드루 크리건의 ‘서향’은 평온한 안식을 청하며, 대미를 장식하는 에릭 클랩튼의 ‘백조’는 ‘공작’과 함께 이 음반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키워드가 된다. 스워츠는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의 의미를 경계를 허무는 이 앨범을 통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 월간 La Musica - 송주호
[ 수록곡 ]
1. Antiche Danze E Arie (1-5) (Ottorino Respighi)
2. Le Jardin Des Paons (Bernard Andres)
3. Grand Duet (7-9) (John Thomas)
4. Going West (Andrew Creeggan)
5. Raga Opus 41 (Caroline Lizotte)
6. Signe (Eric Clapt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