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고 열정적이면서도 대단히 부드러운 음색으로 매혹시키는 새로운 바리톤가수가 등장하였다. 보를레티-뷔토니 상, 도밍고 콩쿨 등에서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조슈아 홉킨스는 남성적이면서도 깊은 표현력으로 가곡의 매력을 한껏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데, 특히 본-윌리엄스의 <여행의 노래>가 갖고 있는 애상을 유려한 떨림으로 들려주는 모습은 너무도 감미롭다. 또한 한편의 뮤지컬을 듣는 듯 하는 북미작곡가 3인의 매력적 노래들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영국과 미국은 하나로 묶어 ‘영미권’이라는 문화의 테두리를 형성한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영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는 점도 있겠지만, 특히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어쩌면 더욱 의미 있는 이유일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 미국, 캐나다 이 세 나라의 작곡가들의 가곡들을 수록한 이 앨범은 그 문화적 동질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 앨범의 주역인 바리톤 조슈아 홉킨스는 이러한 동질감에 집중한다. 그가 들려주는 균일한 비브라토와 모음 위주의 음색 처리는 자음이 비교적 발달하지 못한 영어에 매우 적합한 표현방법이다. 미국 가곡에 강한 면모를 보인 소프라노 수전 그레이엄과 테너 토마스 햄슨이 미국 가곡을 부를 때 들려주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홉킨스는 여기에 내면적 표현력과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를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낭만주의 가곡의 영향을 받은 본 윌리엄스의 ‘여행의 노래’는 리듬을 규정하는 피아노 반주와 그 위에 흘러가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홉킨스는 리듬을 따라 자칫 표현이 증폭되는 위험에 빠지지 않으며, 아홉 개의 작품을 큰 기복 없이 하나의 세트로 연결하고 있다.
글릭의 ‘북쪽의 남쪽 - 캐나다의 이미지’는 여덟 개의 노래로 구성된 작품으로, 캐나다의 자연 환경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피아노는 녹턴과 같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라드 모스비의 피아노는 가수의 노래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독립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멜로디는 다소 어려운 편이지만 홉킨스는 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곡들의 개성을 드러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데, 아무리 동질성에 무게를 두었다고 해도 본 윌리엄스나 이후에 이어지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성격적으로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은 표현력에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폴 보울스의 ‘블루 마운틴 발라드’는 뉴요커답게 대중적인 코드를 은연중에 사용하고 있으며, 피아노의 터치는 이를 표면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같은 미국인이지만 새뮤얼 바버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는 유럽적인 인물로, 유럽에서는 미국인으로 이질감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홉킨스의 음성은 이러한 바버의 작품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 ‘세 개의 노래, Op. 45’는 비록 길지는 않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탁월한 선택이다.
- 월간 La Musica - 송주호
[ 수록곡 ]
1. Songs Of Travel (1-9) (Ralph Vaughan Williams)
2. South Of North - Images Of Canada (10-17) (Srul Irving Glick)
3. Blue Mountain Ballads (18-21) (Paul Bowles)
4. Three Songs, Op.45 (22-24) (Samuel Barber)
